[에베소서] 說.來臨 설.래임. 엡 4:25-32 “오늘도 갈아입어야 할 옷” (그러니까 이제는 새사람답게)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에베소서] 說.來臨 설.래임. 엡 4:25-32 “오늘도 갈아입어야 할 옷” (그러니까 이제는 새사람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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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묵상 엡 4:25-32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오늘도 갈아입어야 할 옷” #그러니까 이제는 새사람답게

그런즉(그러니까)
1. 에베소서를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먼저 1장에서부터 3장에 걸쳐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구원역사로 이루어졌는지를 장엄하게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4장에서 “그러므로”하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1장에서부터 3장에 걸쳐 진술한 모든 말씀을 결론짓는 말씀입니다. 이런 영광과 축복을 받은 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분의 시작 25절은 “그런즉”으로 시작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인지 알려줄테니 그러니까 이제는 이렇게, 이렇게 살라고 상당히 구체적인 대여섯 가지 예를 들어 권고합니다.

그런 은혜는 그만 좀 받고
2. 오늘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실천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살기를 열망하고, 기도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실제로 행동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신앙의 고질병이 하나 있습니다. 늘 신앙의 성숙함을 열망하는 마음을 갖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병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가슴아파하고 보다 깊은 영적 성숙의 단계를 사모하는 것은 정말 귀한 마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말씀을 듣거나, 드물게 깊은 기도의 자리에 들어갈 때면 이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종종 은혜받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은혜 받고 마음이 일시적으로 뜨거워진 상태에서 더 이상 뭔가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은혜 받아 뜨거워진 마음은 식어버리고 이전과 같은 삶의 자리로 원위치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시적인 마음의 뜨거움만 경험했지, 삶의 변화란 전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신앙의 고질병입니다. 우리는 정말 은혜를 받았던 것일까요?

진짜 은혜를 받으면
3. 참된 은혜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넘어, 우리의 손과 발을 주의 뜻대로 움직이게 합니다. 참된 은혜는 나의 계획과 비전이 사라지고, 주님의 인도하심만 바라보게 됩니다. 참된 은혜는 나의 왕국은 무너지고, 주의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참된 은혜는 옛사람의 모습은 벗어지고, 새사람의 모습을 입게 됩니다.

새사람의 몇 가지 모습들
4. 참된 은혜가 임하여 삶이 변화된 새사람의 구체적인 모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거짓 없는 정직함의 모습입니다.
둘째,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모습입니다. 분노의 감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분을 품고 있으면 사탄은 그 감정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새끼를 치곤 합니다. 분노를 품고 자면 그 다음날 반드시 악한 새끼가 나옵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분노는 영어로 anger입니다. anger 단어에 ‘d’ 한 글자를 붙이면 danger가 됩니다. 분노가 일어나면 위험하다는 신호임을 잊지 마십시오.
셋째, 자기 손으로 정직하게 수고하고 일하는 모습입니다. 참된 은혜를 받은 새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삶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수고하여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과 과정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합당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벌어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하고 선한 일들을 한다 한들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넷째,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착한 말을 하는 모습입니다. 탈무드는 혀를 칼이 아닌 화살에 비유합니다. 칼은 쓰려다가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살은 쏘았다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겁니다. 더러운 말, 험담하는 말은 내뱉는 순간 다시 주어 담을 수가 없습니다. 형제자매와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대신 가정과 공동체를 덕스럽게 세울 수 있는 착한 말, 칭찬과 위로와 격려의 말들은 조금도 아끼지 말고 마음껏 서로 해주십시오. 이런 격려와 칭찬의 말만 가득한 공동체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다섯째, 서로에게 친절하고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지내다보면 처음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 서로의 단점이 보이고, 서로가 주고받는 실수와 잘못으로 인한 상처들이 쌓여갈 것입니다. 바로 그 때 필요한 마음이 바로 용납과 용서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교회는 문제없는 교회가 아닌(그런 교회는 없습니다.) 서로 간에 용서를 잘 해주는 교회입니다.

새사람: 성령을 근심케 하지 않는 사람
5.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새사람의 모습은 위의 다섯 가지 삶의 특징적인 모습으로 결코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위의 다섯 가지를 이야기하고 다른 구체적인 모습들을 다 열거할 수 없기에 새사람의 변화된 모습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30절). 신자의 심령 안에 항상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로 새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갈아입어야 할 새사람의 옷
6. 옷은 한번 갈아입으면 끝이 아닙니다. 더러워지면 빨고 또 빨고 계속해서 갈아입는 것이 바로 옷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그 자리에 그래도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사람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이 시간 잠시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같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주의 은혜로 새사람을 입은 존재가 되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옛사람의 정욕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성령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길 위해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정직하고, 혈기를 다스릴 줄 아는 온유한 마음을 소유하고, 성실하고 동시에 선한 방법으로 일하며, 사람을 세우는 선하고 착한 언어생활을 하고, 보다 친절하고 관용하고 서로 용납하는 그렇게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조금도 근심케 하지 않는 새 사람의 삶을 오늘과 내일 살아갈 수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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