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래임 [요5:1-10] 무자비한 자비의 집 '베데스다'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설래임 [요5:1-10] 무자비한 자비의 집 '베데스다'

나들목 0 3359

성경연구&묵상 요 5:1-10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무자비한 자비의 집 베데스다

사랑과 자비의 집?
1. 오늘 본문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풍경입니다. 베데스다는 히브리어 벧과 헤세드의 합성어입니다. 벧은 집을, 헤세드는 자비와 사랑이니 베데스다는 자비와 사랑의 집이라는 연못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선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참으로 무정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비의 집 베데스다는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제쳐야 하는 무자비한 무한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선 모두가 적입니다.
2. 베데스다에는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그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전설 혹은 소문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4절). 그래서 각종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연못가에 누워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렸습니다(3절). 그들은 아마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매번 수혜자는 단 한명 뿐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도달한 자”말입니다. 그러므로 베데스다에선 모두가 다 서로의 경쟁자요, 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선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3. 그 중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9절로 보아선 그는 앉은뱅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코 1등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1등을 하려면 그가 7절에서 예수님께 한 말처럼 누간가 그를 업어주던, 밀어주던 도와주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데스다에선 지금까지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1등의 자리는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유의 주체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 그곳에 찾아오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 그의 간절한 소망을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어주시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가 무엇이라 대답했어야 옳습니까? “네 주님, 정말 낫고 싶습니다. 고쳐주십시오.” 이래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가 한 대답을 보십시오.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 낫지 못하고 있습니다.”(7절)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신을 직접 치유해주실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으로 자신을 밀어주시길 바란 겁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치유의 주체가 아니라 도우미 정도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철저히 의지하십니까? 아니면 도우미 정도로만 생각하십니까?

베데스다가 희망이 아니라, 베데스다를 떠나는 것이 진짜 희망입니다.
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1등으로 베데스다 못으로 들어가길 그토록 원했던 그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그 반대 방향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베데스다가 그의 희망이 아니라, 베데스다를 떠나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 간절한 희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무자비한 무한경쟁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그곳에선 모두가 이겨야 할 경쟁자고, 쓰러뜨려야 할 적이 되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곳이 베데스다였습니다. 그래서 베데스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데스다의 소망은 1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근거 없는 풍문에 불과했습니다. 베데스다의 소망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받고 무한경쟁의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무자비한 자비의 집, 베데스다에서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은 쓰레기더미에 살 것인가? 쓰레기더미를 떠날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6. 평화 교회 연구 소장이신 전남병 목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자신의 선배 목회자 한분이 서울의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난지도에서 빈민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셨다 합니다. 그런데 난지도에도 구역별로 차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로구의 쓰레기가 모이는 구역이 있고, 압구정의 쓰레기가 모이는 구역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난지도에선 치열한 구역 쟁탈전이 일어나곤 한다고 합니다. 더 좋은 쓰레기더미 구역에서 살려고 말입니다.
쓰레기더미에선 벗어나야 하는데 그저 좀 더 나은 쓰레기더미를 차지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리는 곳 난지도, 그곳의 다른 이름은 베데스다가 아닐까요? 무자비한 자비의 장소 베데스다 그 연못가에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히 의지하여 일어나, 그곳을 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베데스다의 세상에서 무한경쟁의 트랙에 자신의 몸을 던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적으로 삼으며 기어이 가장 앞선 자리,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예수님이 찾아와 만나주신 사람들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자비를 의지하여 도무지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우리의 욕망의 자리 베데스다를 일어나 떠나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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