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來臨 묵상] (주권). 삼하 19,20장. 역사 종결자(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는 나라)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說.來臨 묵상] (주권). 삼하 19,20장. 역사 종결자(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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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來臨 묵상] 삼하 19, 20장. '역사 종결자'

다윗의 아마사(직전 압살롬의 군대장관) 중용.
팽 당한 군대장관 요압.
남,북 갈등.
불량배 세바의 반란과 온 이스라엘의 가담.
아마사의 지체함.
요압의 아마사 살해.
세바의 죽음.
아벨성의 지혜로운 여인.
반란의 역사 종결.
요압의 군대장관 복귀.

사무엘하 19장과 20장은 마치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 같은 느낌입니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이 모든 이야기들 안에는 인간의 얄팍한 계산, 자기 이익을 위한 배신과 배반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러한 혼돈과 배반의 이 역사를 종결하는 사람은 절대권력자 다윗도 아니고, 낙하산으로 권력을 잡았던 아마사도 아니고, 막강한 실세였던 요압도 아닙니다. 무명의 한 연약한 여인입니다. 그녀의 지혜로 인해 이 모든 혼돈이 종결됩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해주시고 싶은 걸까요? 결국, 하나님이 이 모든 혼돈의 역사를 종결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벨성 여인의 지혜, 그 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무명하다 할지라도, 비록 연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가 부어지면 역사의 종결자이신 하나님께 쓰임받는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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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묵상글의 전문 전문(全文)입니다.  


[.來臨 묵상] (주권). 삼하 19, 20. 역사 종결자(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는 나라)

 

1.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 그러나 승리의 환호로 가득해야 할 다윗의 진영은 완전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진 왕 다윗 때문입니다(삼하 19:2-3). 다윗의 군사들은 마치 패잔병들처럼 고개를 숙인 채 귀환합니다. 요압은 그런 다윗을 원망하고(6), 협박합니다(7). 요압의 말은 맞지만, 그러나 신하로서 선을 넘은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만큼 요압의 기세는 왕 다윗을 협박할 정도로 등등했습니다.

 

2. 역사적인 왕의 귀환. 다윗은 예루살렘까지 자신을 a.호위하고 b.영접할 사람들을 택합니다.

a. 호위(13): 다윗의 선택은 군대장관 요압이 아니었습니다. 아마사였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마사는 직전까지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b. 영접(11, 15): 다윗은 유다장로들에게 지시하였고, 그 결과 유다족속이 왕을 맞이하러 나오게 됩니다.

c. 의미: 다윗의 환궁을 앞장서 호위하는 인물은 단순한 호위 무사가 아닙니다. 앞으로 다윗의 군대를 누가 지휘할 것인가를 만인 앞에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가 왕의 귀환을 영접하는가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부터 누구를 중심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인가하는 왕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3. 다윗은 왜 요압이 아닌 아마사를 선택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아들 압살롬을 죽인 요압에 대한 징계의 차원입니다. 요압은 사실 이전부터 왕의 뜻을 거역해 아브넬을 암살 하는 등 자꾸만 선을 반 발자국, 한 발자국씩 넘고 있었는데, 이번 일은 선을 넘어도 보통 넘은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마사를 끌어 안으면 몰락한 압살롬의 군대와 추종 세력들을 한번에 다 끌어 안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탁월한 지략가였습니다. 이러한 결정으로 다윗은 개인적 원한도 갚고, 점점 강력해지는 요압의 기세도 꺾고, 정치적 목적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4.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믿을만한 하다고 생각한 자기 골육친척들인 유다 사람들을 중용하려던 다윗의 공개적 메시지에 강력한 반발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삼하 19:40-43). 아들에 의한 배신의 아픔을 경험한 다윗입니다. 배신을 당해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가족 밖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윗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같은 결정은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의 큰 반발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결정이 통일 왕국이 남북으로 또 다시 분열되는 불행의 단초가 된 것입니다.

 

5. 그 결과로, 일어난 일이 삼하 20장의 내용입니다. 불량배(troublemaker.NIV)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1)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바의 반란군에 합류해버린 것입니다. 본래 삼하 1940절을 보면 그래도 이스라엘의 절반은 여전히 다윗을 지지했었지만, 이제는 유다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전 지파가 다윗에게 등을 돌린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는 다시 내전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6. 다윗은 세바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새롭게 발탁한 군의 실력자 아마사에게 군대를 소집시킵니다. 그런데 아마사가 군사들을 모집하는 시간이 지체되고 맙니다(삼하 20:5). 그러자 다윗은 아비새에게 정예병을 이끌고 세바를 신속히 따라가 빨리 진압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6). 요압은 이제 철저히 배제된 듯 보입니다. 다윗의 군대가 세바의 반란군을 추격하던 도중, 요압과 아마사가 마주칩니다. 요압은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역시 교활한 속임수로 아마사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의 또 다른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가 다 지켜보고 있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요압이 왕의 명을 받은 아마사를 대담히 살해할 수 있었을까요? 사무엘하 207절은 다윗의 명을 받은 그 군대에는 여전히 요압을 따르는 자들이 많았음을 알려줍니다. 왕의 마음은 요압을 떠났지만, 군사들의 충성은 여전히 요압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모를리 없었던 요압은 거리낌없이 다윗의 명을 받은 아마사를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군대를 장악한 요압은 군대를 이끌고 세바를 추격합니다(삼하20:13). (본문에 아비새는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비새가 요압의 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7. 한편, 세바는 아벨이란 성읍에 몸을 숨깁니다. 이에 요압은 아벨성을 에워싸고 토성을 쌓아 그 성벽을 헐어버릴 계획을 세웁니다. 이 때 그 성의 한 지혜로운 여인이 딱 나타나서 요압과 협상을 하게 됩니다. “세바를 내어주기만 하면 그 성읍은 안전할 것이다.”라는 요압의 말에 그 여인은 성읍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설득하여 세바의 목을 쳐 요압에게 건네줍니다. 그렇게 아벨 성읍은 무사하게 됩니다. 한편, 23절을 보면 요압은 다시 온 나라의 군대장관이 됩니다. 다윗도 반란군 진압의 영웅으로 떠오른 요압을 더 이상은 내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8. 이상 삼하 19장과 20장의 이런 내용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마치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 혹은 삼국지의 이야기 같은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다윗, 요압, 아벨성의 지혜로운 여인. 그들로부터 어떠한 지혜를 배워야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지혜를 결코 찬양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삼하 19, 20장을 면밀히 읽으며 그 안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무엇이 보이십니까? 모두 인간의 얄팍한 계산, 자기 유익을 위한 배신과 배반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아벨성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바를 받아줄 때는 또 언제고 돌아가는 형세를 보아하니 다 죽게 되니 서슴없이 세바의 머리를 베어 성밖으로 던져버립니다. 모두 자기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무엘하를 묵상하기 시작했을 때 사무엘하는 인간의 왕국 vs 하나님의 왕국의 대결구도로 바라보아야 한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이런 인간들의 얄팍한 계산, 셈법으로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인간 해결자로 누가 등장하는 것입니까? 무명의 한 여인입니다. 절대권력자 다윗도 아니고, 낙하산으로 권력을 잡은 아마사도 아니고, 막강한 실세 요압도 아닙니다. 아벨성의 지혜로운 한 여인입니다. 그 여인으로 인해 이 모든 혼돈은 종결됩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해주시고 싶은 걸까요? 결국, 하나님이 하셨다는 겁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느 지혜로운 여인; 그녀의 지혜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아벨성의 지혜로운 여인; 그녀는 반란의 역사, 나라의 혼돈을 종결하는 이는 결국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10.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십니다. 인간의 얄팍한 지혜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교회는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과 지혜로 친히 세우시는 곳입다. After 코비드19 시대; 교회와 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수많은 예측과 담론이 난무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추어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진동치 않으며,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지혜를 부어주신 또 다른 아벨성의 여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비록 무명하고, 비록 연약할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가 부어지면, 그는 역사의 종결자이신 하나님께 쓰임받는 주역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2 Comments
Henry 2020.10.01 01:00  
중국역사도 이야기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최고관리자 2020.10.01 09:46  
네 ^^;; 언제 커피 마시며~ 함께 썰을 좀 풀어볼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