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來臨 묵상] (모압의 죄). 렘 48장. 우상숭배, 교만, 무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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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來臨 묵상] (모압의 죄). 렘 48장. 우상숭배, 교만, 무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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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臨 묵상 / (모압의 죄) 48. "우상숭배, 교만, 무정함"

 

1. 모압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자신의 두 딸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중 하나인 모압의 후손들입니다. 모압은 하나님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기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압에게도 기업을 주셨습니다(2:9). 또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모압, 암몬, 에돔은 특별히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2. 그러나 모압은 하나님의 계획을 줄기차게 가로막았습니다. 출애굽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때 그 길목을 막았던 대표적인 민족이 모압입니다. 모압 왕 발락은 거짓 선지자 발람을 청빙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고, 그 뜻대로 되지 않자 모압 여인들로 이스라엘 남성들을 유혹하게 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우상 숭배의 악한 길로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 일로 모압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자손의 10대까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징계를 받았습니다(23). 그 후로도 모압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방해하고 괴롭힌 것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압을 심판하십니다.

 

3. 예레미야서 48장은 모압의 죄를 3가지로 고발합니다.

 

첫째, 우상숭배입니다. 그들이 섬기던 우상의 이름은 인신제사로 유명한 그모스입니다(7). 우상 그모스가 인신제사를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우상을 만든 인간들이 선택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에 불안한 인간이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여실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대표적인 우상 맘몬도 이와 크게 다른 점이 없습니다. 맘몬의 신, 물질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이 돈을 얻기 위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는 날마다 확인하며 큰 충격에 빠지곤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엔 무신론자란 없습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대상이 그가 숭배하는 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과 하나님의 본질적인 차이는 스스로 존재하는 신인가 아니면 내가 만든 신인가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신을 의지하는 우상숭배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모압은 그모스를 만들어 자신의 신으로 의지하다가(NIV. trusted) 하나님의 심판과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 명예, 세상권력 모두다 사실은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다가 그것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만들어 숭배하는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둘째, 교만입니다. 48:29은 모압의 교만을 심한 교만, 자고, 오만, 자랑, 그 마음의 거만이라는 모든 표현 가능한 표현들을 다 써서 고발합니다. 모압이 이토록 지독한 교만에 빠진 이유는 평안한 삶과 승승장구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a. 평안. 문제 없는 평탄한 삶.

11절은 모압이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교만해졌다고 고발합니다. 모압의 모습은 찌끼가 곱게 가라 앉은 맑은 술과 같고, 맛과 향이 변하지 않은 포도주와 같다고 묘사됩니다(11).

 

b. 업적과 보물. 잘 나갔던 삶.

7절은 모압의 자신의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였다 고발합니다. 모압은 지형적, 지리적 특성 상 주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외세의 침략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합니다. 모압은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많은 보물을 쌓아두었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점점 스스로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우리는 강하고, 안전하고, 우리의 오늘과 내일은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다라는 자만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이란 포도주를 쏟아 버리고, 그릇을 비우며, 병들을 깨뜨려 버리실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교만한 모압을 철저히 심판하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벧전 5:5). 혹시 우리에게 스스로 쌓아 놓았다 생각하며 바라보며 스스로 높아지는 마음을 가져오는 것들이 있습니까? 돈을 많이 쌓아 놓으신 분, 지위와 명성을 쌓아 놓으신 분, 황금같은 인맥을 쌓아 놓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젊은 날 수고의 열매이지만 그 쌓아 놓은 것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 있음을 두려운 마음으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무정함입니다. 27(표준새번역) 말씀을 보십시오. "모압아, 이제까지는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거리로 삼지 않았느냐? 네가 이스라엘을 말할 때마다, 너는 마치 이스라엘이 도둑질이나 하다가 들킨 것처럼,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지 않았느냐?" 모압은 이스라엘의 형제, 사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할 때 그들은 형제를 조롱하며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은 형제의 아픔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매우 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이웃의 아픔과 넘어짐을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까? 이웃 교회의 상처와 아픔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도 혹시 무정한 백성의 눈과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아닙니까? 모압 사람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이스라엘 사람에게 가장 큰 은혜를 보여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압 여인 룻입니다. 모압은 영원히 모압으로 남게 되고, 이스라엘은 영원한 이스라엘로 남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진정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이 아닌 오직 그가 베푸는 사랑과 섬김 즉 인애(헤세드)로 결정됩니다. 인애를 베푸는 모압 여인 룻과 또 다른 인애를 베푸는 유대인 보아스가 만나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오시는 길이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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