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래임 [요 11:1-16] 기도응답이 지체되는 이유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설래임 [요 11:1-16] 기도응답이 지체되는 이유

나들목 1 5101

성경연구&묵상 요 11:1-16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기도응답이 지체되는 이유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다
1. 한 가족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시지만, 성경은 예수님은 그들을 특별히 더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오라버니 나사로가 심각한 병이 들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청했습니다.

지체하시는 예수님
2. 5절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더니”라고 진술합니다. 그리고 6절은“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라고 진술합니다. 5절과 6절은 전혀 인과관계가 맞지를 않습니다. 사랑하시면 만사를 제쳐놓고 한시라도 빨리 찾아가셔서 고쳐주셔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랑하시더니 계시던 곳에서 오히려 이틀을 더 유하셨다고 합니다. 오히려 지체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틀을 더 유하시는 사이에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도대체 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의 병든 소식을 들으시고도 오히려 이틀이나 지체하시고 그가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셨던 것일까요? 요한복음 11장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두 가지 이유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그들의 믿음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3. 예수님께서는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마리아와 마르다가 기대하던 최선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연히 예수님께서 빨리 오셔서 오라버니 나사로의 병을 치유해주시는 것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어려움과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최선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당연히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신속히 응답하시어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때도 지체하셨고, 오늘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을 지체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속상합니다.
예수님은 왜 지체하셨습니까? 4절. 예수님은 나사로는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은 허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나사로를 살리실 즉 나사로의 부활을 계획해놓으셨습니다. 병이 치유되는 것은 자연적으로도 혹은 의술로도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죽은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의도셨습니다. 기도응답이 지체될 때 그래서 때때로 우리가 더 어려운 상황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그 자리에서 우리 주님은 더 놀랍고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의 믿음을 위해서
4. 예수님이 지체하신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을 위해서였습니다. 곧바로 치유하셨다면, 지체하시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말씀으로 혹은 한걸음에 달려 오셔서 안수하셨다면 나사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 치유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곧바로 주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시면 우리는 스스로 그 문제를 놓고 기도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곤 합니다. 내 실력으로 혹은 운이 좋아서 혹은 사람을 잘 만나서 그 사람의 도움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은 잊어버린 채 말입니다.
예수님은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기도 응답이 지체되어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가는 그 자리에 있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은 치유를 넘어 부활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죽은 자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믿음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당연히 믿음이 견고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체하신 이유는 그들의 믿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터널은 어둡지만 최선의 지름길입니다.
5. 동굴과 터널은 어둠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터널은 동굴과 다르게 출구가 있고, 그 끝에는 빛이 있습니다. 또한 터널은 지날 때면 답답하지만 통과하고 나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터널이 바로 지름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요청에 바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지체하시기도 하십니다. 그 지체된 시간이 그들과 우리에게는 답답한 터널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터널 끝에 그 때의 그들과 오늘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가장 찬란한 부활의 빛이고 최선의 지름길임을 깨닫습니다.  

1 Comments
에스더 2020.03.24 05:31  
긴터널 저쪽에서 기다리는 찬란한 영광의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억하는 하루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