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來臨 묵상. 데살로니가전서(11) 살전 4장 1-12절. "거룩함의 네 영역"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說.來臨 묵상. 데살로니가전서(11) 살전 4장 1-12절. "거룩함의 네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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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來臨 묵상. 살전(11) 살전 4장 1-12절. "거룩함의 네 영역"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우리가 거룩함에 거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과 결정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4가지 거룩함의 영역을 가르쳐줍니다. 이 네 영역은 데살로니가교회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시대 모든 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상황 속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1. 음람함을 버릴 것(3절)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원문-그릇)를 대해야 합니다. [*그릇에 대한 2가지 해석: 1)아내, 2)자기 몸 - 어떤 해석을 따라도 전체의 의미는 변하지 않습니다.]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의 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색욕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5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받은지 불과 얼마되지 않은 새신자들이었습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오래된 삶의 습관이 바뀌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세상의 만연한 음란함을 버리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배우자를 대하라 명령합니다.   


2.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것(6절) 

이 말은 형제의 것을 착취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문맥상 드러나는 1차적 의미는 형제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는 '간음죄'에 관한 경고이지만, 이 의미는 성적인 영역에서 확대되어 형제의 모든 소중한 것, 형제의 경제적 이익을 착취하지 말라는 명령이 됩니다. 크리스챤은 자기 분수(몫)에 만족해야 합니다. 자기 몫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타인의 몫까지 욕심을 내어 독식하려는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오백명, 오천명의 몫을 독식하게 되면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굶주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야만 합니다. 크리스챤 기업의 노동력 착취, 비정규직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는 아무리 그 기업이 선교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것은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크리스챤인 고용주가 아무리 교회에 헌금과 십일조를 크게 한다 할지라도 그가 고용인들의 정당한 몫을 착취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이 세상에서 너무 큰 욕심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속한 교회 뿐 아니라, 이 세상 전체가 크게 보면 더불어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동체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형제를 사랑할 것(9절)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 대부분은 이제 갓 복음을 받아 크리스챤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사도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함의 영역은 수직적으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함의 영역은 수평적으로도 그 지평이 펼쳐져야만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형제) 사랑이 함께 갈 때 비로소 그 교회와 성도는 거룩함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생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일에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각각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형제 사랑에 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4. 열심히 성실히 일하는 것(10-12절)

거룩함의 영역은 교회생활 뿐 아니라, 일상의 삶까지 포함됩니다. 교회생활은 신앙생활의 한 영역일 뿐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진정한 거룩함은 자신의 삶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잘못된 종말론(시한부 종말론)을 가르키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흔들렸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제 곧 세상에 종말이 오니, 가정이니 직장이니 하는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사실 다 자기를 추종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비성경적 시한부 종말론은 지금도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종말이니 학교도, 직장도 갈 필요가 없고 가정도 돌볼 필요가 없고 오직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결코 거룩한 자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생활만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착각하고 가정과 직장에서의 맡은 일은 등한시 하고, 교회생활에만 몰두하는 것 역시 거룩한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기 위해 전능하신 능력으로도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라면 우리 역시 그래야만 합니다. 가정에서 거룩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고, 설겆이 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십시오. 일터에서 거룩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손으로 수고하여 맡은 바 일에 성실하십시오. 교회생활만큼 일상생활 역시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해야만 하는 영역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5. 우리는 이렇게 본문의 네 영역에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지 않을 때, 우리는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저버리는 것이라 무겁게 경고하십니다(8절). 성령님은 거룩한 곳에만 거하십니다.  

1 Comments
최고관리자 2020.11.20 07:34  
거룩함의 영역은 교회생활 뿐 아니라, 일상의 삶까지 포함됩니다. 교회생활은 신앙생활의 한 영역일 뿐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진정한 거룩함은 자신의 삶에서 맡겨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시대에나 우리 시대에나 비성경적 시한부 종말론은 동일하게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세상이 끝나니 학교도, 직장도 갈 필요가 없고 가정도 자녀도 돌볼 필요가 없고 오직 어디 모여서 기도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결코 거룩한 자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생활만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착각하고 가정과 직장에서의 맡은 일은 등한시 하고, 교회생활에만 몰두하는 것 역시 거룩한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기 위해 전능하신 능력으로도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라면 우리 역시 그래야만 합니다.
가정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고, 설겆이 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야 합니다. 일터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손으로 수고하여 맡은 바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교회생활만큼 일상생활 역시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해야만 하는 영역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