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과 친구들의 징하게 긴 대화(변론), 공동번역으로 뉘앙스 따라잡기"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욥과 친구들의 징하게 긴 대화(변론), 공동번역으로 뉘앙스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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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과 친구들의 징하게 긴 대화(변론), 공동번역으로 뉘앙스 따라잡기" #그렇다고공동번역예찬론자절대아님
솔직히, 욥기의 개역(개정) 번역본은 읽다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공동번역으로 읽으니 정말 욥기 읽기가 쉽습니다. 특별히 욥기는 친구들과의 대화, 변론이 내용의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대화는 화자와 화자간의 뉘앙스를 놓치면 해석이 산으로 가기 마련인데, 공동번역은 정말 뉘앙스를 잘 살렸습니다. (물론 공동번역에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점은 조심해야것지만요)
예를 들면, 욥기 23장 10절의 공동번역 번역이 이렇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다니.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욥이 자신의 무죄함을 항변하는 뉘앙스가 너무 잘 살아 있지 않나요?
아래 공동번역으로 한번 읽오보세요. '엘리바스'가 '욥'에게 말하는 뉘앙스를 잘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제가 그 옆에 있었으면 엘리바스를 쥐어박을 것 같네요)
(욥기 4:2-4) / 공동번역
누가 자네에게 말을 건네려 한다면, 자네는 귀찮게 여기겠지.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일세. 여보게, 자네는 많은 사람을 지도하였고 손에 맥이 풀린 사람에게 용기를 주었었네. 자네의 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켰고 흔들리는 무릎에 힘을 주었었지. 그런데 자네가 이 지경을 당하자 기가 꺾이고 매를 좀 맞았다고 이렇듯 허둥대다니, 될 말인가?
 
(욥기 4:6-8) / 공동번역
자신만만하던 자네의 경건은 어찌 되었고 자네의 희망이던 그 흠없는 생활은 어찌 되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게. 죄없이 망한 이가 어디 있으며 마음을 바로 쓰고 비명에 죽은 이가 어디 있는가? 내가 보니, 땅을 갈아 악을 심고 불행의 씨를 뿌리는 자는 모두 그 심은 대로 거두더군.

(욥기 4:12-17) / 공동번역
그런데 은은히 들려오는 한 소리 있어 가늘게 나의 귓전을 울렸네.
사람들은 깊은 잠에 빠져 밤의 환상으로 가슴을 설렐 때, 몸서리치는 두려움이 나를 덮쳐 뼈마디가 온통 떨리고 있는데 그의 입김이 나의 얼굴을 스치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네. 나의 눈앞에 누가 우뚝 서는데 그의 모습은 알아볼 수 없고 만물이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나, 한 소리를 들었다네. "죽을 인생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올바를 수 있으랴? 그 누가 자기를 지으신 이 앞에서 깨끗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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