設.來臨 묵상. 열왕기하 10장. '나의 熱心' (feat. 예후의 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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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 14:03
設.來臨 묵상. 나의 熱心 (feat. 예후의 열심)
왕하 10:6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예후의 열심은 여호와를 위한 것이라고는 했지만 "나의 열심을 보라"는 표현에서 엿볼 수 있듯 누구에겐가 보이기 위한 열심이요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열심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열심인가? 나의 열심인가?
예후는 요람과 이세벨을 처형했고, 아합의 아들들 70명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여기까지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경계선이었습니다.
(왕하 9:8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그런데 예후는 진멸의 대상인 아합의 집을 넘어, 아합에게 속한 귀족들, 신뢰받는 자들, 제사장들까지도 모두 죽입니다(11절).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사실은 자신의 잠재적 정적들을 다 제거한 것입니다. 게다가 예후는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까지 다 죽이는 끔찍한 포악을 저지릅니다. 물론 이 땅에서 바알숭배 신앙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하나님의 열심을 내세우며 말입니다. 하나님께선 이 일을 매우 악하게 보셨습니다.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호세아 1:4)
3. 결국 자신을 위한 열심이었음이 증명되다!
예후는 비록 말은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열심을 보라" 했지만 그의 이후의 행적을 보면 결국 그것은 자신을 위한 열심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한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31). 예후는 바알은 제거냈지만, 금송아지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여로보암이 그랬었듯 예후 역시 자신의 권력을 위해 금송아지는 그대로 두었던 것입니다. 예후가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위한 열심으로 바알을 제거했다면 그가 금송아지라는 다른 우상을 가만 두었을리가 없습니다. 결국 예후의 열심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 뒤에 숨은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위한 열심이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사역이란 딱지가 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는 지금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하고 있다." 말합니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런 말을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도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실종되고 율법만 남은 사역을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고 말하고, 겸손을 잃어버리고 우월감만 남은 선교도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 말하고, 심지어 교회 안정이란 미명하에 죄를 덮어주거나 교회를 세습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나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에 붙들려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자신의 열심에 충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