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래임 說.來臨 묵상] (사명) 단 5:1-12 '세상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설래임 說.來臨 묵상] (사명) 단 5:1-12 '세상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최고관리자 3 12082

다니엘 강해 (8th) 51-12

성경연구&묵상 다니엘서 5:1-12 “세상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설래임 .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저무는 왕국

1. 5장은 바벨론 왕 벨사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벨사살 때의 바벨론은 신흥강국인 페르시아(메대-바사)에 패권을 내어주며 급격히 몰락하고 있었습니다. 벨사살은 제국과 자신의 왕권이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나라 안에 대대적인 잔치를 베풉니다. 오늘 본문은 그 때 일어난 참으로 기이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벽에 나타난 손가락 글씨

2. 한창 잔치의 여흥이 돋구어질 무렵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벽에 알 수 없는 글자를 써내려가는 겁니다. 이 광경은 벨사살과 그곳에 있던 모든 귀족들의 마음을 두려움에 벌벌 떨게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벨사살은 누구라도 이 글자를 읽고 해석하기만 하면 제국의 넘버 쓰리가 되게 해주겠다 공포합니다.(사실 그 당시 바벨론이 진짜 왕은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입니다. 그런데 나보니두스는 이 당시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치루기 위해 전장터에 나가 있는 상태였고, 그 사이 국내 정치를 아들 벨사살에게 맡겨둔 것입니다. 그래서 넘버 투가 아닌 넘버 쓰리의 자리를 공약한 것입니다.)

 

다니엘(벨드사살) vs 벨사살

3. 그러나 그 엄청난 상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 글씨를 읽지도 해석도 못했습니다. 그 때 왕비가 한 사람을 천거합니다. , 다니엘입니다. 성경이 매우 흥미로운 것은 다니엘의 바벨론식 이름이 벨드사살이었다는 사실입니다(1:7). 어째, 벨사살 왕의 이름과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지금 성경은 다니엘과 벨사살을 의도적으로 나란히 놓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주입니다. 그의 바벨론 이름인 벨드사살은 벨이 그 생명을 보호한다.’라는 뜻입니다. 이방인으로서 바벨론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벨드사살로 사는 것이 맞지만, 다니엘은 세상에서의 성공보단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다니엘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이 바로 벨사살입니다. 벨사살은 벨이 왕을 보호한다.’라는 뜻입니다. 똑같은 이름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인 이 정말 왕을 보호해주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벨사살의 나라는 점점 패망의 낭떠러지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고, 그의 인생 역시 불안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불안을 감추고자 온 나라에 잔치를 벌여 자신의 견고함을 과시했지만 결국 벽에 쓰여진 하나님의 메시지로 인해 그는 두려움에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 왕이 포로에게 도움을 청하다.

4.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사는 사람들의 대표격인 벨드사살(다니엘) vs 벨의 보호 아래 사는 사람들의 대표격인 벨사살. 누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벨드사살(다니엘)은 패망한 나라에서 포로로 끌려온 사람입니다. 벨사살은 절대 권력을 가진 제국의 왕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합니까? 지독한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습니다. 패배자가 승리자에게, 포로가 왕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오늘 제국의 왕 벨사살은 포로로 끌려온 이방인 벨드사살(다니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남겨줍니다. 우상의 보호 아래, 맘몬()의 보호 아래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또 다른 다니엘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함, 거대함이란 겉모습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끝없이 불안해하며 그 불안감을 잊기 위해 자신을 과시하고 있는 이 세상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불안한 세상의 유일한 대안

5. 우리가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다니엘(벨드사살)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왕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어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해석해주어야만 합니다. 영원히 견고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흔들리는 이 세상의 대안입니다. 왕도 포로도, 권세자도 비천한 자도,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우리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벨사살에게 유일한 대안이 다니엘(벨드사살)이었던 것처럼, 불안에 휩싸인  세상의 유일한 대안은 교회와 성도임을 또다른 다니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바로 여러분임을 잊지 마시길 축원합니다.

 

3 Comments
Henry 2020.06.20 03:15  
벨사살의 아버지가 느브갓네살이라고 잘 못 알고 있었네요. 당시의 주변 상황을 설명하여 주시니, 마치 역사 소설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고관리자 2020.06.20 12:21  
● 느부갓네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왕이 등극했습니다. 벨사살입니다. 단 5장은 벨사살 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단 5장 2절을 보면,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란 말 때문에 벨사살이 그의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친(히브리어-아브)는 부친이란 뜻도 되지만 조상이란 뜻도 됩니다. 실제로, 느부갓네살은 왕하 25장에 나오는 에윌므로닥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겨우 통치 두 번째 해에, 느부갓네살의 큰 사위 즉 자신의 매부인 ‘네르갈 사라셀’에게 암살을 당합니다. 네르갈 사라셀도 겨우 4년을 통치하고 죽게 되고, 그후 사라셀의 아들(그러니까 느부갓네살의 외손자)가 미성년에 왕이 됩니다. 그리고 겨우 9개월 통치하다 정적들에 의해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궁중의 암투가 장난이 아니죠. 그 뒤로 느부갓네살의 작은 사위(나보니두스)가 재위하게 되는데, 그의 아들이 바로 오늘 본문의 벨사살입니다. 
● 사실, 정확히 말하면 벨사살은 실제 역사 속에서 왕이 아니라 왕세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진짜 왕 나보니두스는 재위 17년 중에 10년을 전쟁터에서 보낼 정도로 호전적인 인물로, 오늘 본문의 사건 당시에도 떠오르는 신흥강대국인 페르시아 제국(성경에선 메대-바사 왕국)과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왕궁에 남아 내정을 대리로 치리하던 왕세자가 바로 벨사살입니다. 성경은 이 벨사살을 왕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한편, 바벨론과 신흥강대국 페르시아 제국의 전쟁은 점점 페르시아쪽으로 기울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바벨론 국내 상황도 여간 어지러운게 아니었음은 자명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벨사셀이 대대적인 잔치를 베풀고 있는 겁니다. 왜요? 우리 왕국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뿐이었습니다. 세계사에선 페르시아의 군사력이 바벨론을 압도했기에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시대를 끝내신 것입니다. 사람의 손가락들이 갑자기 나타나 벽에 글씨를 써서 바벨론의 시대를 끝내시겠다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적은 것이 바로 다니엘서 5장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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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도회 설교 원문입니다. 좀 더 상세한 역사의 배경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에 관심을 갖고 다가오시는 성도의 모습은 늘 목회자에게 큰 격려와 도전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Henry 2020.06.23 01:27  
이런 역사 이야기 재미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같고,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도 같다거 생각합니다.  대니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