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 법] 가정에서의 성령충만과 피차복종 @엡5장
나들목 칼럼
‘가정에서의 성령충만과 피차복종’
에베소서 5장은 성령충만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한 사람의 중요한 특징을 ‘피차 복종’하는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죄인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성경말씀조차도 내가 좋아하는 구절에서만 유독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22, 24절), 존경하라(33절)”는 말씀에 은혜를 받고, 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들이여 자기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같이(죽기까지) 사랑하라(25절),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28절)”의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받은 은혜를 서로에게 적용하느라 온통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사랑이 아닌 다툼과 더 깊은 갈등을 낳게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말씀이 기록된 1세기 당시 여성들의 인권은 그야말로 바닥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유대인들의 2가지 감사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과,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었겠습니까? 이 말씀을 받는 1차 수신자들 중 1세기의 여성 크리스챤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바울 사도의 권고는 하나도 마음이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사실 여성들의 인권이 존중받게 된 것은 서구 사회에서도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한 두 해 전 영화 ‘링컨’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링컨이 노예제도 전면 폐지를 위해 수정헌법 13조를 의회에 올렸을 때 하원 의원 중 한명이 냉소적으로 이런 대사를 합니다. “이러다가 여자들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소.” 그러자 좌중이 아우성을 칩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말씀이 사실은 ‘약자’를 위한 교훈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에베소서 6장의 부모와 자녀와 관계에서도, 상전과 종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1차적으로 상대적 약자를 위한 말씀입니다. 1세기 당시의 여성, 자녀, 종들은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엡 5, 6장) 남성도 여성에게, 부모도 자녀에게, 상전도 종들에게 ‘피차 복종’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차 복종’ 이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대전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는 ‘피차 복종’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피차 복종’하는 모습과 방법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엡 5장은 그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아내는 남편의 권위를 순종하고 복종하고 존경함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라 하십니다.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말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헌신적으로 그것도 죽기까지 사랑함으로 아내에게 복종하라 하십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듯이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서 ‘피차 복종’하는 것은 단순한 의무를 넘어서는 사랑 때문입니다. 33절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을 ‘존경’이라는 단어로 대신합니다. 여성은 사랑한다는 말에 감동하고 마음이 움직입니다. 오죽하면 여자는 사랑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존경한다는 말에 감동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부부싸움을 들여다보면 남편들이 항상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왜 날 존중하지 않느냐?”입니다.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남자들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나봅니다. 남자들에겐 존중과 존경이 곧 사랑입니다.
일전에 드라마 ‘동백 꽃 필 무렵’을 재밌게 보았습니다. 등장인물 중 주인공 가게의 건물주인 노규태는 변호사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아내의 존중과 존경에 목말라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노규태는 자신을 존경한다는 그 한마디 말에 다방 아가씨에게 일시적이나마 마음을 빼앗깁니다. 노규태는 존경이라는 사랑에 목말라 있었던 겁니다. 분명 잘못된 마음이지만 남성에게 존경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남성에게 있어 존경은 여성에게 있어 사랑의 동의어인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을 존경하십시오.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피차 복종하며 가정을 세워가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의 참 모습입니다.
엡 5장은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말씀해주십니다. 31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부부가 온전히 한 몸이 되기 위한 전 조건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사역자의 글이 생각납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한 침대에 누울 때 거기엔 6명이 한꺼번에 눕는다는 것입니다. 아내, 남편,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 이렇게 6명 말입니다. 둘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데 6명이 한 침대에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습니까? 부모를 떠나지 못하면 부부는 하나 되기란 요원하기만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 되기 원하는 부부라면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각각 부모의 품을 떠나야 합니다. 내 자녀의 부부가 하나되길 원하시는 부모님이라면, 알아서 가정을 이룬 자녀들을 떠나보내셔야 합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이 말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자녀의 결혼을 계기로 끊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은 정서적인, 경제적인 의존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한 부부는 각각 부모를 떠나 세상의 풍파를 둘이 함께 겪으며 동지가 되고 전우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교회 생활만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도 우리에게 성령 충만은 필수 조건입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아내는 존경하기 힘든 조건의 남편을 존경함으로, 남편은 지배하고픈 남성 특유의 죄성을 버리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함으로 ‘피차 복종’을 이루십시오. 또한 부모를 의존함에서 온전히 떠나 성령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둘이 한 몸을 이루어가길 힘쓰십시오. 그때에 우리의 이 소중한 가정은 비로소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장(場)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