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면왜곡 #판단

단면왜곡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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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면 왜곡

1. 사춘기던가? 소위 엄청 뜬 성장 드라마가 있었다. 배경이 내 고향 춘천이었다.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TV속 주인공와 친구들이 매일 다니는 곳들이 어딘지 매번 궁금했었다. 화면 속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워 꼭 가보고 싶었고, 친구들끼리 만나면 거기가 어딘지 서로 물어보기 일쑤였다. 결론은 항상 싱거웠다. 우리도 다 가본 데였고, 춘천 사람이라면 항상 다니던 평범한(?) 곳들이었다.

2. 중학교 때부터 꽤 오래 살았던 신동아 아파트는 미군부대 바로 앞에 있었다. 동네 뒤편으론 내일 철거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쓰러져가는 기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음습한 골목이 있었다. 그곳은 밤이면 동네 껄렁한 애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되곤 했다. 춘천 소양로 기와집 골목. 신대원을 들어갔을 무렵으로 기억나는데, 그곳이 갑자기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렸다. 욘사마형님의 겨울연가 덕분이었다. 내가 봐도 TV 화면 속 기와집 골목은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낭만적 모습이었다. 실제와 카메라 앵글 속 단면의 이미지는 간극은 너무 컸다.

3. 카메라의 앵글은 연출자의 의도가 담기기 마련이다. 의도된 단면. 삶의 단면을 업로드 하며 소통하는 랜선 세계 역시 그렇다. 그래서 이 세계에선 어쩔 수 없는 왜곡, 과장, 축소가 일어난다. 간혹 나쁜 의도가 없진 않지만 대개는 그저 단순한 단면의 왜곡일 뿐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역시 그랬다. 다 내 의도라는 기준에서 잘 나온 사진들 뿐이다. 얼굴이, 느낌이, 분위기가 잘 나온 사진들. 나의 수고와 선함과 자상함이 잘 묻어나온 사진들. 그리고 뭐 대충 그런 글들. 거기엔 예외 없는 과장, 축소, 왜곡이 있다.

4. 그런데, 이런 단면의 왜곡이 어디 랜선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 할 수 있을까?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든 시각에는 어쩔 수 없는 굴절과 왜곡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시각 자체가 단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c.s.루이스의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원재료만 보고 판단하시지 않고, 그 원재료로 무엇을 했느냐로 판단하신다.

“고양이에게 병적인 공포를 느끼는 신경증 환자가 어떤 좋은 이유 때문에 꾹 참고 고양이를 집어들 때, 하나님은 건강한 사람이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더 용감한 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어렸 을 때 성격이 비뚤어지는 바람에 잔인함이 몸에 밴 어떤 사람들이 동료들의 조롱을 무릅쓰고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거나 어떤 잔인한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 과 제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보다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 中.

5. 단면을 보고, 너무 쉽게 부러워도 말고 무시하시도 말자. 너무 성급하게 찬양하지도 말고 판단하지도 말자. 내가 보는 모든 것엔 과장과 축소라는 왜곡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특별히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나의 단면적 시각을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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