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민주적 공공성: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

[독서감상문] 민주적 공공성: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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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공공성

: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 (사이토 준이치)

 

이 책의 저술 목적은 다음 한 문장으로 매우 선명히 드러난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유용성 여부로 판단되지 않는 공동성의 차원에 주목함으로써 이 문제를 생각하기 위한 하나의 단서를 마련하고자 한다."(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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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그동안 공공성이란 개념은 안타깝게도 주로 관제용어(:시민의 권리 주장이나 이의 제기를 거부하기 위해 국가가 사용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의 공공성은 더 이상 국가의 전유물(preserve)로 전락되어서는 안되며, 민주적 정통성(democratic legitimacy) 및 민주적 통제(democratic control)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려되어져야만 한다.

 

2. 민주적 정통성이란 정치적 의사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관계자가 의사형성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나아가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조직적인 배제를 막아야 하는데(민주적 통제), 이 때 필요한 요소가 공공적 이유(public reason)이다.

 

3. 저자는 아렌트의 시각을 바탕으로 공공성은 기본적으로 동일성(identity)아 아닌, 복수성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렌트는 단지 공리주의(쓸모가 있는가만을 척도로 하는)의 냉혹한 척도를 배격하며, 조건과 자격의 차별없는 모든 인간의 자유를 강조한다. 아렌트의 관점은 성서의 관점에 가깝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삶은 다른 것으로는 결코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unique) 것이라는 아렌트의 인식은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각 사람의 존귀함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면서도 어떤 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다. 이 때문에 복수성(plurlity)은 인간 행위의 조건인 것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p.57).

 

4. 그러므로 공공성이란 의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을 의미하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의 공공성과 시민적 공공성이 종종 충돌하기도 한다. 국가와 정부는 공공정책, 공공사업이란 이름으로 공공성을 실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사실은 많은 경우 결국 정치적 이득(예를 들면, 표를 받기 위한)이 목적이었음이 드러나며, 바로 그 때 그에 대한 반발로 민주사회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시민적 공공성의 외침이다. 시민적 공공성의 외침의 크기와 자유만큼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성숙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5. 개인적으로 참 흥미로웠던 사실은 이러한 공공성과 관련해서 주의할 것이 공동체 주의라는 것이다. 공공성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인데 반해, 공동체는 좋던 싫던 필연적으로 닫힌 영역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하게 공공성을 추구하는 공동체는 반드시 동일성(identity)의 위험을 인지하며, 차이를 조건으로 하는 담론으로서 공공성을 끊이없이 견지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실패한 공동체는 아무리 공공성을 외친다 해도 결국 배제와 혐오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우리 시대, 교회 공동체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6. 한편, 하버마스는 시민적 공공성의 기초를 의사소통의 자유비판적 공개성으로 이해하는데, 그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공권력에 대한 비판적 영역으로 위치되어 있고, 핵심은 시민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우려처럼 민주주의는 종종 포퓰리즘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에 그 때에 발생하는 오류를 견제하고 수정할 수 있는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

 

7. 결론적으로 저자 사이토 준이치는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통해 민주사회에서의 공공성의 의미를 심도 있게 고찰하며, 이에 한걸음 더 나아가 공공성이란 것이 단지 사회적 안전망이나 복지제도를 확립하는 정도에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구체적 타자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며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별히 우리는 타자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복수성 개념을 받아들여, "타자에게 현상하기 원하는 대로 존재하라.(Be as you would wish to appear to others)"는 아렌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민주적 공공성은 그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만 견고히 확립될 수 있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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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공공성은 진리의 공간이 아닌, 의견의 공간인 것이다. 의견은 그리스어로 'DOXA'이다. 의견이란 "나에게는 이렇게 보인다"(dokei moi)라는 세계에 대한 관점을 타자를 향해 말하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열려 있다. 공공적 공간에서 담론의 의미는 이 다름을 서로 분명하게 하는 데 있지, 이 다름을 하나의 합의를 향해 수렴하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공간에서는 어떤 한 사람의 관점이 상실되어가는 것이 문제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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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의문]

1. 이 책의 부제는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인데, 어떻게 넘어서라는 건지 혹은 무엇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전적으로 독자인 나 자신의 내공의 부족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2. 저자가 밝힌 이 책의 관심사 중 하나는 공론장(公論場)에 어울리는 주제를 설정하는 것인데, 저자는 개인적인 것을 삼가지 못하는 담론은 배제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혹은 사적인 것은 공공적인 것에 반사적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논의의 바탕으로 삼은 하버마스와 아렌트 등의 학자들은 종교나 신앙을 사적인 것’(privatize)로 다룸으로써 공공적인 쟁점에서 제거하는 경향을 갖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민주적 공공성 담론은 매우 기독교적인 가치와 맞닿아 있으나 이 지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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