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상처, 그 흔적을 지닌 교회

그리스도의 상처, 그 흔적을 지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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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상처, 그 흔적을 지닌 교회 (요 20:19-29)

믿음은 그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의심, 확신, 불신, 맹신이 그 이름들입니다. 의심은 불신이 아닙니다. 의심은 때로 불신을 낳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대상이 참되다면 그 의심은 결국은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진실과 진리에는 사람을 설복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 한 사람을 위해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여드레(eight days) 후에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26절). 의심하는 도마 한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자신의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던 도마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시어 자신의 몸에 난 못 자국, 창 자국을 보여주십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과 몸의 상처를 보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고백합니다.

오래 전 이어령 교수님의 `교회 밖에서 본 교회'란 제목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 강연에서 이어령 교수님은 자신은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마가 예수 부활의 증거로 요구한 것이 바로 고난의 흔적이었고, 예수님께서 부활의 증거로 도마에게 보여주셨던 것 또한 고난과 아픔의 상처였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진리 때문에 고난당한 흔적, 시대의 아픔에 동참한 상처 자국, 세상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당한 희생의 흔적...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흔적과 자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하여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집단화된 이기심, 거대한 야망 그리고 세속화된 성공주의와 출세주의뿐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증거가 결단코 아닙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당하셨던 고난의 상처와 아픔의 흔적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주십시오. 나는 그 교회의 교인이 되겠습니다.”

확신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만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여전히 의심하는 도마에게 찾아오시어 그 손의 못 자국, 그 몸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을 죽기까지 섬기신 그 상처 자국을 보여주심으로 의심하는 도마가 확신하는 자로 변화되어 그도 부활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심하는 세상과 이웃과 가족을 향해 무엇을 보여주려 합니까? 불신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들은 지금도 우리 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세상을 섬기고 사랑한 그리스도의 흔적을 간절히 보길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엔 이어령 교수님과 같이 도마가 보았던 그 주님의 상처를 교회로부터 보기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 불리는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못 자국을 지니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그 몸의 지체라 불리는 나는 어떤 섬김과 희생의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까? 세상을 죽기까지 섬기신 그리스도의 상처를 지닌 교회와 성도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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