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來臨 묵상] (의지함) 삼하 16:15-17:14 인간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
[說.來臨 묵상] (의지함) 삼하 16:15-17:14 인간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
1. 다윗의 권고에 따라 후새는 압살롬에게 거짓 투항을 하게 됩니다. 후새는 곧 압살롬의 신임을 얻게 되고, 아히도벨과 숨막히는 지략 대결을 하게 됩니다. 아히도벨은 먼저 압살롬에게 2가지 전략을 제시합니다. a.다윗의 후궁들을 범할 것과 b.서둘러 정예군을 뽑아 다윗의 진영을 기습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2. 다윗과 압살롬의 전쟁은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입니다. 언제 화해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싸움입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고 해서, 성급히 압살롬의 편에 섰다가 그가 아버지와 화해하거나 행여 전쟁에서 패하기라도 하면 그 땐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기에 대다수의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저 형세만을 관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아버지의 후궁들을 범하면 어떤 일어나겠습니까?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제 반드시 어느 줄이건 한 쪽에 설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사람들이 어느 줄에 서겠습니까? 당연히 현재의 대세,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압살롬이겠죠. 그러니 전략적으로만 보면 아히도벨의 이 제안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가 아니겠습니까?
3. 아히도벨은 또한, 서둘러 정예군을 뽑아서 다윗의 진영을 기습하자고 제안합니다. 압살롬과 그를 지지하는 장로들은 그 제안을 듣자마자 너무 좋아합니다(삼하17:4). 이제 출격 명령만 내리면 되는데, 압살롬의 마음에 난데없이 얼마전 자신에게 투항해왔던 다윗의 친구 후새가 떠오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압살롬은 갑자기 후새도 불러서 그의 의견도 들어보겠다 합니다(삼하17:5).
4. 후새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 아히도벨의 전략이 틀렸음을 말합니다. 첫째, 다윗을 따르는 자들은 용사들인데 지금 그들의 상태가 새끼를 뺏긴 곰같이 격분한 상태이기에 목숨걸로 덤벼들게 뻔하니 지금 서둘러 그들을 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유입니다. 둘째, 다윗은 병법에 능한 자이기 때문에 백성들과 함께 자지 않고 분명 따로 굴에 숨어 지낼 텐데, 다윗이 어느 굴에 숨었는지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유입니다. 셋째, 이런 상황인데 성급히 쳐들어갔다가 다윗은 잡지도 못하고 행여 군사를 몇이라도 잃게 되면 전체 군영의 사기가 심각하게 꺾일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략을 제안합니다. 한마디로 다 모아 한방에 쓸어버리자는 전략입니다. 단부터 브엘세바까지(*백두에서 한라까지) 바닷가의 모래같이 군대를 모으고, 압살롬 당신은 그 압도적이고 위세당당한 대군의 가장 앞에 서서 그들을 친히 이끌고 전장에 나가라는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어느 성에 들어가 있기라도 한다면 온 이스라엘이 줄을 가져다가 아예 그 성 자체를 강으로 끌어와 통채로 없애버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과장된 표현입니다. 그러나 후새의 제안은 하루아침에 천하를 얻게 된 권력자의 영웅심리, 허영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방금전까지 아히도벨의 전략이 역시 최고라 칭송했던 압살롬과 장로들은 이제 후새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백팔십도 바꿉니다. 후새의 전략이 채택된 것입니다.
5. 표면적으로 보면, 아히도벨과 후새의 지략 대결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묵상하는 우리는 "어떤 사람의 지혜가 더 나은가?", 사람들의 탁월한 지혜와 지략에만 눈길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서 사람에게 지혜를 주시기도 하시고 사람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시선에서 놓쳐서는 안됩니다. 압살롬이 왜 갑자기 그 중요한 순간에 후새의 말도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그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고 신뢰했던 아히도벨의 그 탁월한 전략을 뒤로하고 왜 다윗의 친구, 그것도 불과 얼마전에 자기 진영으로 망명해온 후새의 전략을 선택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움직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6. 갑작스런 피난길에서 다윗은 일찍이 이렇게 기도한바 있습니다.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15:31). 이 모든 일은 다윗의 기도응답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하 17장 14절은 이렇게 진술합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하나님의 지혜가 아히도벨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시고, 압살롬의 분별력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잠 21:30).
7. 그렇다면,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해야만 합니까? 압살롬에겐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는 옵션밖에는 없었습니다. 아히도벨이냐 후새냐? 그의 선택지에는 하나님의 지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의 지혜가 자신을 가로막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윗의 선택, 제 1옵션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결국, 누가 승리합니까? 다윗입니다.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여 살 것인가?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여 살 것인가?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