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來臨 묵상] (소명). 렘 40장.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說.來臨 묵상] (소명). 예레미야 40장.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오늘부터 나들목비전교회의 말씀묵상은 다시 생명의 삶 QT집 묵상 본문 순서를 따라갑니다.)
세상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1. 예루살렘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이 재앙은 너희의 범죄함과 불순종함 때문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막상 2절부터 읽어내려가다보면 그 말씀이 바벨론의 시위대장 느브사란단의 입술을 통해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억울해하지만 말고
2.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믿지 않는 세상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느부사라단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단순한 조롱이나 억울한 모함도 아니었습니다. 정곡을!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뼈 때리는 말이었습니다. 요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당하고 있습니다. 성난 세상의 고함치는 소리에 무조건 귀를 닫아서는 안됩니다. 좋지 않은 목적과 불순한 왜곡과 과장의 요소가 분명 있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공의의 저울에 다시는 하나님의 평가와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음성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신 미래가 보장된 자리
3. 예레미야는 끌려가는 포로의 무리가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은 진실한 선지자 예레미야를 풀어주고 그를 선대하며 그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라고 명령합니다(렘 39:12). 왕의 명령을 따라 느바사라단은 예레미야를 풀어주고 자신과 함께 바벨론으로 갈 것을 권유합니다(렘 40:4). 만약 자신과 함께 바벨론으로 간다면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고 약속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의 호의와 사령관 느부사다란 그 땅에 남아 있는 자기 백성 중에 거하기로 결정합니다. 예레미야의 이러한 선택과 결정은 오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선택은
4. 사실 바벨론 포로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허용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훗날 다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일으키시겠다는 계획을 갖고 계셨음을 누구보다도 예레미야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던 바벨론의 왕과 그 뒤를 잇는 제국의 2인자가 바벨론으로 오면 예레미야를 선대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고려해봐도 그렇고, 보장된 미래라는 현실적 판단을 고려해봐도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는 게 맞는데, 그는 굳이 황폐화된 땅. 소망의 빛줄기 조차 희미해진 땅. 자기 백성들이 비참히 거하고 있는 그 땅 가운데 남기로 선택합니다.
모세, 바울, 예레미야 그리고 예수님의 선택
5. 이러한 예레미야의 거취 선택은 사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모세의 선택과 그리고 하루 빨리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길 원했지만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그들과 함께 있기를 원한 바울의 선택과 똑닮아 있습니다. 나아가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뒤로 하시고 영영히 버림받아 소망없던 나와 같은 죄인들을 찾아오시어 죄인들 가운데 거하시길 기뻐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선택과 동일합니다. 예레미야는 얼마든지 바벨론으로 가서 그곳에서 풍요와 평안이 보장된 삶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고통받는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있기를 선택했습니다.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6. 오늘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오늘 하나님의 교회가 향해야 하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모세, 바울, 예레미야 그리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향하신 자리가 어디인지 우리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한 자리를 포기하고, 연약하고 비참한 상태에 처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한 자리로 우리는 나아가야만 합니다.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선명하게 확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