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4 “끝까지 사랑하고 순종하라.” (마26:26-46)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4 “끝까지 사랑하고 순종하라.” (마26:26-46)

나들목 0 6839

나들목비전교회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4 [번민의 날,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

 

26:26-46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순종하라.”

 

1.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이 날 예수님께서는,

a.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b.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 땀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하며(번민의 날) 다음 날 있게 될 십자가 지심을 준비하셨습니다. 마태는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마음이 심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26:38)고 표현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번민의 날, 이 두 사건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a.서로 사랑하고, b.고통스러울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끝까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2. 구주께서 베풀어주신 (최후의) 성만찬 자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버리실 것을 다 아셨을 때에 베풀어주신 자리입니다(31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성만찬의 떡과 잔을 나누며 자신의 생명을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생명을 주는 것, 그것은 가장 큰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알고서도 그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겠노라 약속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고난 주간 우리는 주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로 굳게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걸어가신 길은 어떤 길입니까? 배반을 당하고, 버림을 당해도 끝까지 사랑하기로 결정한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내게 아픔을 주는 그 사람도 끝까지 사랑하며 섬길 수 있습니까?

 

3.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1)첫째, 제자들의 죄를 씻기신 것입니다.

유대 땅은 대부분 모래 바람이 날리는 황무지입니다. 게다가 당시는 샌들(sandal)을 신고 다니던 시대입니다. 밖을 조금만 걸어다녀도 발은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발을 씻기시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쉽게 더러워지는 곳인 발은 죄의 오염을 상징한 것입니다.

유대문화 속에서 손님으로 초대받으면 목욕을 하고 갑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집에 도착할 때 즈음엔 유대 땅의 특성상 항상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을 시켜서 손님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요청대로 목욕이 아닌 발을 씻겨 주신 것은 이러한 문화적 배경 하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즉시 그의 피로 의의 목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을 다니며 주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항상 죄의 때가 묻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 앞에 나온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그 자리에 있던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예수님께 내 발을 즉 나의 더러운 죄를 내어놓아야만 합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씻어 주십니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진 자리가 바로 최후의 만찬 자리이며 오늘 우리의 성만찬 자리와 예배의 자리입니다.

2)둘째, 섬기라는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발을 씻어주시며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어떤 본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죄를 씻어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를 씻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럼 어떤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까? 섬김의 본, 사랑의 본입니다. 본래 발은 종들이 주인을 그리고 존귀한 손님을 씻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인생의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그의 종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너희도 이제는 이렇게 큰 자가 작은 자를, 강한 자가 약한 자의 발을 씻는 사랑의 섬김을 행하라는 의미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내 가족, 이웃, 동료들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 겸손히 연약한 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는 섬김의 교회, 사랑의 교우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4. 최후의 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은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겟네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37절은 고민하고 슬퍼하사로 표현했고, 38절은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표현합니다. 한편, 38절을 원문에 가깝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고통이 빈틈도 없이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겟세마네는 올리브 압착기라는 뜻을 지닌 지명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그가 오르신 동산의 이름 뜻대로 올리브가 압축기에서 짓이겨 빠여지듯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짓눌려 계셨습니다. 곧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단순한 십자가 형벌의 육체적 고통이 두려우셨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한 번에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해야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가 우리 구주께 가장 고통스러운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39). 누가복음 2244절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셨습니다. 우리 역시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평상시에도 기도해야 하지만, 고난의 때엔 더욱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중 하나입니다. 고난의 때에 더욱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죄인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축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5. 우리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 기도하시며 하나님께 간절히 한 가지를 구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9). 잔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아버지, 혹시 제가 이 심판을 받지 않고 인류를, 이 세상을 구원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것이 예수님의 솔직한 마음이셨습니다. 그리니, 고난 앞에 선 모든 인간의 솔직한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누구도 고난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단코 없습니다. (아무리 고난이 위장된 축복이니 뭐니 말해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잔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 기도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일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끝까지 순종하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우리는 철저한 자기부인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6. 우리의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시험을 만나지 않고, 고난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시험 속에서 고통스러울지라도 끝까지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의 변화가 아닌 내 마음의 상태를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정말 피하고 싶은 괴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내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끝까지 순종하여 갈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7.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우리는 자신을 배반하는 제자들을 끝까지 섬기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겟세마네 동산 그 주님의 마지막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는 피하고 싶은 사명이지만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리기로 기도하는 우리 주님의 순종을 배웁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걸으신 그 길 위에 서기로 결단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도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순종합시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