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래임 說.來臨 묵상] (승리) 단 7:15-28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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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09:39
성경연구&묵상 /다니엘서 7:15-28/ (찬 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결코 기대하지 않은 현실
1. 큰 말(8, 11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오만한 말)을 하던 작은 뿔(적그리스도)은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깁니다(21절). 성도가 이겨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의 어려움입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면 인생이 평탄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을 때가 너무 많은 것이 실제의 성도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공격하는 작은 뿔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강력해보입니다(19, 20절).
마지막 게임 스코어가 말해준다.
2. 그러나 이때에도 성도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의 결말은 언제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불편한 현실을 사는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믿음이란 오늘의 현실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작은 뿔의 권세는 너무나 강력해서 영원할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반드시 작은 뿔을 꺾어버리실 것입니다(26절). 이것이 바로 나라를 빼앗긴 암담한 현실, 적국의 포로로 끌려온 참혹한 현실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다니엘의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비참한 현실 속에 갇힌 당신의 백성들에게 ‘정해진 때가 되면 결국 너희는 승리할 것이니, 조금만 더 인내하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단 7장의 한때와 두때와 반때, 계 13장의 마흔 두달
3. 하나님을 대적하는 작은 뿔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뿌리 채 뽑혀버릴 것입니다. 다니엘의 환상 속에서 정해진 하나님의 때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25절)라 하십니다. 때는 1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42개월이 됩니다. 다니엘서 7장의 환상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사도 요한의 환상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계 13장에서 요한 사도는 바다에서 나온 한 짐승을 목격합니다(계 13:1).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한데, 그 발은 곰과 같고, 그 입은 사자와 같다 합니다. 그리고 열 뿔 개가 달려 있습니다. 다니엘서 7장의 네 짐승을 합쳐 놓은 이미지입니다. 둘 모두 똑같은 ‘세상 권세’를 의미합니다. 용(사단)에게 강력한 권세를 받은 그 짐승은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계13:5),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계13:7). 그러나 악한 짐승이 활동하는 시기는 마흔두 달(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7:25)로 한정됩니다(계13:5). 누가 그 기한을 정했습니까? 네.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계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완전히 동일한 예언입니다.
악의 유효기간
4.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악한 세상 권세는 그 유효기간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 7장), 즉 마흔 두 달(계 13장)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기간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단의 악한 세력이 득세하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악한 세력은 무너질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성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인내하라. 결국 너희가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현실이 아닌 약속을 붙들라
5.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현실의 찬란함이 결코 아닙니다. 불교의 상징은 원입니다. 오른쪽으로 넘어져도 물 흐르듯 돌아가고, 왼쪽으로 넘어져도 물 흐르듯 돌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현실은 항상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통과 인내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 인내의 끝에는 반드시 영원한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악이 득세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마흔 두 달)의 그 어느 지점 즘 살고 있습니다. 언제가 그 기한의 끝인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분명 가까웠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세상 모든 나라와 권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 즉 성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단 7:27). 이것이 다니엘서 7장의 환상의 결론적 메시지입니다.
오늘은 광야를 걷지만...
6.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결론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할렐루야! 아버지의 것은 상속자인 자녀들의 것이 됩니다. 현실은 어둡기만 하고 지금 당장에는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나라, 권세, 영광 모두 성도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성도란 눈앞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광야라는 현실을 걷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광야를 걷지만, 내일 우리는 약속의 땅을 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오늘을 인내하며, 내일의 확실한 승리의 영광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주의 종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결코 기대하지 않은 현실
1. 큰 말(8, 11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오만한 말)을 하던 작은 뿔(적그리스도)은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깁니다(21절). 성도가 이겨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의 어려움입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면 인생이 평탄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을 때가 너무 많은 것이 실제의 성도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공격하는 작은 뿔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강력해보입니다(19, 20절).
마지막 게임 스코어가 말해준다.
2. 그러나 이때에도 성도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의 결말은 언제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불편한 현실을 사는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믿음이란 오늘의 현실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작은 뿔의 권세는 너무나 강력해서 영원할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반드시 작은 뿔을 꺾어버리실 것입니다(26절). 이것이 바로 나라를 빼앗긴 암담한 현실, 적국의 포로로 끌려온 참혹한 현실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다니엘의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비참한 현실 속에 갇힌 당신의 백성들에게 ‘정해진 때가 되면 결국 너희는 승리할 것이니, 조금만 더 인내하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단 7장의 한때와 두때와 반때, 계 13장의 마흔 두달
3. 하나님을 대적하는 작은 뿔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뿌리 채 뽑혀버릴 것입니다. 다니엘의 환상 속에서 정해진 하나님의 때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25절)라 하십니다. 때는 1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42개월이 됩니다. 다니엘서 7장의 환상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사도 요한의 환상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계 13장에서 요한 사도는 바다에서 나온 한 짐승을 목격합니다(계 13:1).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한데, 그 발은 곰과 같고, 그 입은 사자와 같다 합니다. 그리고 열 뿔 개가 달려 있습니다. 다니엘서 7장의 네 짐승을 합쳐 놓은 이미지입니다. 둘 모두 똑같은 ‘세상 권세’를 의미합니다. 용(사단)에게 강력한 권세를 받은 그 짐승은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계13:5),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계13:7). 그러나 악한 짐승이 활동하는 시기는 마흔두 달(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7:25)로 한정됩니다(계13:5). 누가 그 기한을 정했습니까? 네.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계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완전히 동일한 예언입니다.
악의 유효기간
4.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악한 세상 권세는 그 유효기간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 7장), 즉 마흔 두 달(계 13장)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기간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단의 악한 세력이 득세하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악한 세력은 무너질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성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인내하라. 결국 너희가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현실이 아닌 약속을 붙들라
5.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현실의 찬란함이 결코 아닙니다. 불교의 상징은 원입니다. 오른쪽으로 넘어져도 물 흐르듯 돌아가고, 왼쪽으로 넘어져도 물 흐르듯 돌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현실은 항상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통과 인내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 인내의 끝에는 반드시 영원한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악이 득세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마흔 두 달)의 그 어느 지점 즘 살고 있습니다. 언제가 그 기한의 끝인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분명 가까웠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세상 모든 나라와 권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 즉 성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단 7:27). 이것이 다니엘서 7장의 환상의 결론적 메시지입니다.
오늘은 광야를 걷지만...
6.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결론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할렐루야! 아버지의 것은 상속자인 자녀들의 것이 됩니다. 현실은 어둡기만 하고 지금 당장에는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나라, 권세, 영광 모두 성도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성도란 눈앞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광야라는 현실을 걷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광야를 걷지만, 내일 우리는 약속의 땅을 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오늘을 인내하며, 내일의 확실한 승리의 영광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주의 종들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