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래임 說.來臨 묵상] (정체성) 단 10:1-9 '다니엘로 살아가기'
성경연구&묵상. 다니엘서 10:1-9. #찬 317장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정체성] 다니엘로 살아가기
혼돈의 역사, 하나님의 관심
1. 다니엘은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 큰 전쟁은 장차 페르시아와 헬라 제국간의 전쟁입니다(단11:2). 그런데 장차 일어날 그 전쟁 자체가 성경의 주된 관심이 아닙니다. 성경의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날 일(단10:14)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님 백성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일을 전혀 예측할 수도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에 힘겨운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경건한 어른이 그립습니다
2. 오늘 다니엘의 환상은 바사 왕 고레스 제 삼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단 1:21을 보면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이방의 궁중에서 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환상은 다니엘이 90세 전후의 기력이 쇠한 나이가 되어 이미 은퇴한지 2년 후에 받은 환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90세 전후의 어르신, 더 이상 현역에 머무를 수 없어 은퇴하신 다니엘 어르신인데 이 환상을 본 후 다니엘은 세이레(21일)동안 최소한의 음식물만 섭취하시면서 장차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 받을 자기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경건한 어른에 대한 큰 그리움을 안겨줍니다. 다니엘은 비록 현역에서 더 이상 뛸 수 없을 정도로 육체의 기력이 쇠한 노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 백성을 위해 생명을 걸고 기도합니다.
기도에 은퇴란 없습니다
3. 그리스도인은 기도에 있어서는 결코 은퇴란 없음을 배우게 됩니다. 현역에서의 은퇴가 마치 믿음의 경주를 다 마친 것처럼 인식되어서는 안됩니다. 환상을 통해 알게 된 앞으로의 역사는 어쩌면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 다니엘에게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일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이 경건한 어른의 모습입니다. 어른의 모델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 우리에겐 다니엘과 같은 경건한 어른들이 너무 필요합니다.
정체성: 다니엘로 살아가기
4. 큰 전쟁의 환상을 목격하는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로 불리고 있습니다(1절). 어린 나이에 포로로 끌려왔던 다니엘은 바벨론의 궁중에서 70여년을 벨드사살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졌습니다. 이름이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벨드사살은 ‘벨(바벨론의 신)이 보호자다’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심판주시다’라는 뜻입니다. 벨의 보호 아래 살 것인가? 심판주 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살 것인가? 다니엘은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정체성에 있어서는 회색지대란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항상 자신을 ‘나 다니엘’로 불렀습니다(2절, 7절).
오늘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지길 바라고 있습니까? 물질의 보호 아래 사는 벨드사살의 이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다니엘의 이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벨드사살과 다니엘 두 이름 모두를 갖고 살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처럼 하나님과 물질은 결코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물질의 보호 아래 거하길 원하는 이 시대에 다니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