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來臨 묵상. 데살로니가전서(5). 2장 6-10절. "그리스도인의 권리포기"
說.來臨. 살전(5). 데살로니가전서 2장 6-10절. "그리스도인의 권리포기"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기 때문에(6절), 3가지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1. 권리포기(1) - 사도의 권위
초대교회의 사도의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유모와 같이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대했다고 합니다(7절). 어떤 부모도 갓난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부모의 권위를 사용해 먹이는 법은 없습니다. 혹시 갓난 아이가 젖을 안 문다고 해서 부모의 권위를 내세우면서 “니가 김히 이 귀한 젖을 안물어?,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거야?” 이렇게 말하는 부모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바울은 자신이 마땅히 행사할 수 있었던 사도권을 주장하지 않고 어떻게든 젖을 물리려는 유모와 같이 그들을 대했습니다. 갓난 아이에겐 어떻게서라도 젖을 먹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권위보다 사람들의 영혼이, 생명이 귀했기 때문입니다.
2. 권리포기(2) - 사역자의 생계권
바울은 사도권을 주장해서 자비량을 하지 않아도 정당한 복음 전도자의 몫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여 삶을 꾸렸고, 선교사역의 재정을 확충했습니다(9절). 그 때 그 상황 속에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바울 사도가 항상 자비량으로 사역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특수한 경우에만 자비량으로 사역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보아도, 성경의 여러 교훈을 보아도 복음 전도자는 복음을 받는 신앙 공동체의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당시 바울 사도가 자비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헬라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자신의 철학을 설파함으로 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흔했던 분위기와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바울 역시 데살로니가교회 그 신생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례비를 받았다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그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당연한 생계비를 공궤받는 것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었던 것입니다. 즉,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복음을 위해 데살로니가에서 기꺼이 자비량을 선택한 것입니다.
3. 권리포기(3) - 자신의 생명(즉, 모든 권리)
바울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그들을 위해 내어주길 기뻐했다고 합니다(8절). 생명은 모든 사람의 가장 기본적 권리입니다. 생명이란 권리를 포기했다는 것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어떤 권리든 기꺼이 다 포기할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그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복음은 언제나 오늘 본문의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기꺼이 포기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해 이 땅에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은 정말 가장 중요한 가치인가요? 우리는 복음을 위해 우리의 어떤 권리를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나요?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권위, 내가 마땅히 얻어야 하는 권리와 권익이 있습니다. 자기 몫을 받는 것은 언제나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보다 복음을 더 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해서 나의 정당한 몫, 권리, 권익을 포기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