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Disappointment With God.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눅 7장. 흔들리는 세례요한)
눅 7장 18-27. 設.來臨 묵상
"Disappointment With God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1. 최근 한국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킨 행신교회 김관성 목사님이 어제 SNS에 올린 기도문입니다.
“주님. 우리 시대의 목회자들이 무명한 자신의 처지를 팝니다. 별 거 없는 자기 인생도 팝니다. 자기의 한과 상처도 팝니다. 그거 팔아서 주님을 선전하고 교회를 알립니다. 주님. 우리 동지들의 이런 행태를 욕하는 것이 아니에요. 얼마나 주님께서 우리를 안 도와주시면 다들 이렇게 하겠습니까.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 그거 하나 세워보려고 자기 인생, 자존심, 가정, 체면까지 다 내던지고 있는 이 사투를 언제까지 그냥 지켜 보시기만 하실겁니까? 불법으로 세습하는 자들이, 권력을 손에 잡은 자들이, 돈과 빽을 의지하는 자들이 실제로 잘되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이 세상과 교회, 이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합니까? 내가 다 알고 있다. 내가 곧 다 심판하리라, 내가 너희들의 수고를 다 안다. 제발 이런 뜬구름 같은 이야기 말고 실제적인 뭔가를 지금 당장 좀 해주십시오. 화병에 죽을 것만 같습니다. 이땅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속았다는 말을 요즘 입에 달고 사는데, 주님. 주님을 향한 내 심정, 아니 많은 이들의 심정이 사실 비슷합니다. 우리가 주를 진실로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겨서 맞이하는 현실이 왜 항상 시궁창입니까? 보통 간증책에서는 인간이 이 정도 난리를 피우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더만, 왜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늘 찬바람만 붑니까? 왜 아무것도 안들리고, 이 개떡같은 현실을 그냥 견뎌야 합니까? 섭섭합니다. 많이 섭섭합니다. “너희들이 모르는 깊은 뜻이 있다.” 또 그말 하시려고 그러시죠? 그만 하십시오. 우리도 지칩니다. 이제 뭔가를 해 볼 기력도 없습니다.“
2. 위의 기도가 어떻게 들리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불편한 분이 계시다면, 순전한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 선지자가 주님께 드렸던 기도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께 속았습니다. 주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렘 20:7, 새번역). "주님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렘 15:18, 새번역). 적어도 이 기도 속에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속이는 분, 믿을 수 없는 분입니다. 남의 인생 갖고 낚시하는 분, 기대와 소망을 와장창 깨뜨리는 야속한 분입니다.
3. 필립얀시는 그의 책,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에서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들 뿐이다."라고 합니다. 기대가 있고, 믿음이 있으니 실망도 하는 것입니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철저히 믿으면 믿을수록 그 크기와 강도만큼 실망이 큰 법입니다. 길거리 지나가는 아저씨나 일년에 몇번 마주치는 동네 아줌마한테 실망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믿었던 남편, 아내, 자녀이기에 실망하고, 진심으로 기대했기에 교회와 목사에게 우리는 실망합니다. 가장 철저히 믿고 기대했던 하나님께 때때로 가장 크게 실망합니다.
4. 지금 감옥에 갇힌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실망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성령 충만한 사람, 인류역사상 가장 큰 인물로 예수님께 인정받은 사람 세례요한 조차도 하나님께 실망했습니다. 순전한 예레미야도 하나님께 실망하고, 필립얀시도 김관성 목사님도 하나님께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실망하곤 합니다.
5. 세례요한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세상의 악한 것들, 율법에 충성하지 않는 것들은 다 도끼로 찍어버리고 불에 태어버리는 강력한 심판주의 모습이었습니다.
(눅3: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3:17)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6.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점점 세례요한을 지치게 합니다. 들려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은 강력한 심판주의 모습이긴 커녕, 연약하고 죄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감옥안 세례요한의 마음엔 (예레미야처럼)속았다는 느낌도 불현듯 올라오곤 합니다. 곧 모든 불의를 세상에서 말소시켜 버릴 메시아를 드디어 만났다고 믿었는데, 그가 행하는 모습을 보고 듣고 있노라니 자기 인생이 부정당하는 듯한 억울함도 올라왔을 겁니다. 세례요한은 도무지 참다 참다못해 이제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내가 그토록 기대하며 기다렸던 메시아가 정말 당신이 맞는 겁니까?" (눅 7:19-20).
7. 그런데 예수님은 시원하게 긴지 아닌지 대답은 안주시고, 동문서답만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눅 7:23)" '세 왕 이야기'로 유명한 진 에드워드는 그의 또다른 작은 책 ‘3호실의 괴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3호실의 죄수는 세례요한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은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이 단순히 상황 때문에 온 것이든, 다른 이의 행동 때문에 온 것이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이 비극은 우리 삶 속에 찾아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바램대로 움직이시지 않는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그 하나님께 실망합니다. 우리네 현실 속, 이 지긋지긋한 고통의 문제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시지 않는 하나님이 때로는 얄밉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 이해못해도, 그것 때문에 실망스럽고 괴로운 날에도 항상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을 믿고 끝내 버티고 실족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8. 결국 믿음이란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주권자의 행하시는 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하나님이 참 야속한 날에도, 하나님께 크게 실망한 날에도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티어 믿음의 길에서 실족하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언제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움직여주신 적 한번이나 있으십니까? 그래도 여지껏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하여 이 믿음의 길 위에 비틀거리면서도 우리가 어떻게든 서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 실망한 날엔 이런 기도라도 솔직하게 드려야 저는 실족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