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생활] 야고보서 3장. 说.来临.묵상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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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6 06:47
나들목 说.来临 설.래임 묵상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야고보서 3장)
1.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죽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나는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닌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정갈한 사람도 내게는 별게 아니다. 나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경멸한다. 나는 나를 통해 희생된 자를 전 역사와 전 세계에 갖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다. ….. 내 이름은 험담(gossip)이다.”
2. 우리의 말은 정말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말로 이 세상을 파괴합니다. 잠언 18장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우리의 말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3. 야고보서 3장 2절은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말에 실수가 많다고 하면서, 만약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다! 선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엔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반복해서 ‘우리가‘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도 그 문제에 있어서 예외가 아님을 천명합니다.
4. 세상에서 제일 길들이기 힘든 것은 ‘혀’입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7, 8절) 여기서 참 흥미로운 것은 야고보 사도가 예를 든 사람이 길들일 수 있는 4가지입니다. 짐승, 새, 벌레, 바다의 생물 이 4가지는 그냥 야고보 사도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예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자, 한번 비교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고 그 인간에게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다스리라고 하신 것들이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 땅의 짐승, 온 땅에 기는 모든 것-벌레입니다.
야고보사도가 말하는 사람들이 길들인 것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이런 하늘과 땅의 모든 생물들, 그것들이 아무리 힘이 쎄고 빠르고 날라다닐지라도 그것들을 다 다스리고 길들이는데, 오직 하나만큼은 그게 잘 안된다는 겁니다. 가장 작은 인간의 혀! 말입니다.
5.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제발 충격 좀 받으라고 2가지 비유를 들어줍니다.(3, 4절)
첫째, 말들의 입에 물리는 재갈입니다. 재갈은 힘쎄고 고집스러운 야생마에게 물리는 작은 도구이지만, 그것을 통해 주인은 말을 자기 뜻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배의 키입니다. 배의 키는 배의 크기에 비하면 정말 작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키로 그 큰 배를, 그것도 광풍에 밀려가는 배를 조정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서 혀는 정말 작지만, 그 혀의 위력은 우리 인생 전체를 흔들 수 있기에 특별히 혀를 조심히 다루라고! 야고보 사도는 경고하는 것입니다.
6. 이 세상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시위를 떠난 화살이고 둘째는, 흘러가는 세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 입 밖으로 나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함에 있어서 신중해야 합니다.
기분 따라, 성질 따라 아무 말이나 내 뱉어 놓고, 너무 쉽게 ‘아. 이건 말 실수였어. 말 한마디 실수한 것뿐인데 뭐.’ 그렇게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말입니다. 왜 그런지 5절과 6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는 무시무시한 산불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전 얼마 전까지 담배꽁초가 그 산불들의 주범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담뱃불도 물론 심각한 문제지만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페트병들이 산불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따가운 햇볕이 버려진 유리병이나 페트병을 통과하면서 초점이 모아져 결국 불길을 만든다는 겁니다.
무심코 내 뱉은 내 말 한마디가, 나이겐 그저 작은 실수일지 모르지만 그 말 때문에 누군가의 삶의 수레바퀴는 불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 입에서 실수로 나온 그 말이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지옥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 두렵습니다.
8.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이 악독한 혀를 콱 깨물면 될까요? 그저 방법은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내 입술의 파수꾼이 되어주셔서 우리의 혀를 길들여주시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편 141:3). 굳게 결단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혀를 통제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셔야만 합니다.
9. 성령님께서 혀를 길들여주신 사건이 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박방에 성령이 임하신 사건입니다. 인간이 범죄한 후 가장 먼저 더러워진 것이 바로 ‘혀’입니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던 입술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라고 말하는 원망과 정죄의 입술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서로를 원망하고 비판하고 저주하던 타락한 입술을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해보십시오. 타락한 입술이 회복되어 다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혀를 다스려주실 때의 모습입니다.
10. 오늘 야고보 사도 역시 말씀합니다. (약 3:9-10)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가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아멘)
언어가 영성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영성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 성령은 우리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시어 우리의 타락한 혀를 비로소 길들여 주실 것입니다. 자신의 혀를 제어해보고자 괜히 묵언수행일랑 하지 마시고(잘 아시겠지만 효과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는 입술로 길들여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이 우리 입술의 파수꾼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하고 또 사모합니다. 정말 안되니 더욱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