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說.來臨 설.래임. 엡 2:11-22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에베소서] 說.來臨 설.래임. 엡 2:11-22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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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묵상 엡 2:11-22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

1. 저명한 기독교 저술가인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란 책이 있습니다. 교회가 나의 고민이라니요? 뭔가 괜히 불경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원제목은 더 심각합니다. “ Church; why bother?” 원제목을 해석하면 “교회 왜 날 괴롭게 하는가?”입니다.
그 책에서 스위스의 내과의사이자 기독교 상담가이자 또한 철학자이기도 한 폴 트루니에의 말을 인용하는데 참 인상 깊었습니다. 세상에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2가지가 있는데, 결혼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백성들을 부르실 때 홀로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로 함께 부르십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2. 공동체로 부르시는 이유는 다름아닌 하나님의 존재 방식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완전하고 온전한 공동체로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공동체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에 유일하게 보시기에 좋지 않으셨던 것도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3. 흥미롭게도 우리말 ‘좋다’라는 말은 ‘조화롭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우리말은 신기하게도 성경의 가치를 아주 잘 담아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보시기에 좋았더라” 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천하만물이 가장 조화롭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 그것이 좋게 보이셨던 것이입니다. 또한 우리말 나쁘다는 “나 뿐이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나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모양의 죄의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나쁜 사람들을 유심히 분석해보십시오. 그들이 왜 다른 사람의 것들을 착취하고, 탐욕을 부립니까? 소중한 건 나뿐이기 때문입니다. 나뿐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나뿐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것들을 착취하고, 나뿐이라고 생각하니 긁어모으면 모았지 결코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나뿐이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원죄 역시 창조주 하나님마저도 무시하고 나뿐이길 원했기 때문에 범한 죄입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실 때 “나 뿐으로”가 아닌, “함께”하는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본문 11-19절까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서로에게 원수 같은 존재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화평케 하셨고 그 둘로 하나되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20-22절까지는 화평케 된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함께 세워나가는 가를 그림언어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설명한 것으로만 생각지 말고, 오늘 우리 교회에 적용해야만 합니다.
먼저 우리는 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원수 된 관계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잘못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려 하고, 내가 꼭 이기려 하고, 다른 사람 보다 높이 올라가서 앞서야만 하는 관계가 이 세상의 인간관계의 특징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처럼 온전한 공동체로 모일 수가 없는 존재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함께 부르셔서 하나님의 집을 세워가시길 원하십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의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는 과정을 머리로 그려보십시오. 먼저 주춧돌을 놓습니다. 성경은 모퉁이돌이라고 합니다. 모퉁이돌은 그리스도이시며, 이미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놓여져있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가 함께 그 위에 쌓여져 하나님의 집을 이루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집을 세우는 하나의 벽돌입니다. 만일 제가 건축가라면, 반듯한 벽돌들만 모아다가 집을 짓기 시작할 것입니다. 모난 벽돌, 상처난 벽돌들은 애시당초 다 갖다 버리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해 모난 돌들을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놓으십니다. 하나님이 모으신 돌들은 저마다 특별하게 모난 부분들이 있습니다. 모양이 어찌나 제각각인지 집을 만들어 가기 위해선 튀어나온 부분은 정으로 쳐내고, 모난 부분들은 끌로 끌어내려 깎고 다듬어 서로 맞추고 또 맞추어 나가야만 합니다. 건축가 입장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수고스러운지 모릅니다. 벽돌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를 세워가는 돌들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그렇게 때문에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6.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 보십시오. 저마다 모양과 사태의 심각성은 다르지만 모가 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쌓여져 주님의 집을 세워나가려면 필수적인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 튀어나온 부분과 옆 사람의 모난 부분이 맞춰지기 위해선 나도 그도 반드시 깎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내가 깎이는 것보다는, 다른 돌이 깎이고 다듬어져서 내게 맞추기를 저마다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불만과 원망을 토해냅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런 모양의, 저렇게 모난 돌들과 함께 제가 쌓여져야 합니까? 하나님은 어떤 벽돌을 깎기도 하시지만, 깎다가 다 부서질까봐 때로는 그래도 좀 더 내구성이 좋은 ‘나’를 조각하여 파내시기도 하십니다. 튀어나온 돌과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주님의 집을 세우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7. 옆 사람의 모난 부분들 때문에 그 사람을 째려보지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쌓아서 주님의 집을 세우려고 친히 준비하신 분들입니다. 째려보려면 하나님을 째려보십시오. 감히 그렇게 못하겠다면 이제는 그도 받아들이십시오. 원래 하나님의 집은 그렇게 쌓여져 가는 것임을 인정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필립얀시의 책 제목처럼 교회는 나의 사랑이기도 하지만, 나의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결혼만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애시당초 혼자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와 정말 맞지 않는 사람도 나와 함께 쌓여져 주님의 집을 세워가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재료임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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