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說.來臨 설.래임. 엡 6:1-9 “생활신앙”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에베소서] 說.來臨 설.래임. 엡 6:1-9 “생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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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묵상 엡 6:1-9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생활신앙

1. 우리는 가정에서의 삶을 가정생활이라 부릅니다. 직장, 사회에서의 삶은 사회생활이라고 부릅니다. 교회에서의 삶은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네 보통은 교회생활이라 부르지 않고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반은 맞기도 하고 반은 틀리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이란 교회생활뿐 아니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에서의 삶 즉 교회생활만이 신앙생활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2. 에베소서 5장 18절부터 6장 9절까지의 말씀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대전제는 5장 18절로 오직 성령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엡 19-20절은 성령충만할 때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게 되는지 말씀해줍니다.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을 찬송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감사는 성령충만의 결과이자 동시에 성령충만의 동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성령충만할 때 우리는 21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피차 복종하는 피차의 범위가 모든 인간관계로 점진적으로 확장됩니다. 부부관계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로 그리고 나아가 종과 상전의 관계로 나아갑니다. 즉 가정생활이던 사회생활이던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피차 복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관계에서 ‘피차 복종’하려면 ‘성령충만’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성령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전영역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만 신앙생활이라고 쉽게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습니다. 성령충만은 모든 삶의 영역을 포괄하여 영향력을 끼칩니다.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은 생활신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4. 오늘 본문은 1-4절까지는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생활신앙이 이루어지는지 말씀해주십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유심히 보면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량 부모가 우상에 절을 하라던가, 예수를 부인하라던가 등의 명백한 죄를 강요한다면 그 때도 복종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부모에게 자녀들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만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만의 기준과 판단으로 자녀들의 의견을 무시하곤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기분 때문에 자녀들에게 일관성 있는 기준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여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부모의 권위로 자녀를 존중하지 아니하고 찍어 누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때 자녀들은 노여움을 느낍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경계하고 어린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인격을 존중함으로 그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게 그리고 일관성있게 양육하겠는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5.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었고, 자녀의 권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심지어 어린 자녀들의 생사여탈권도 부모에게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 사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말하면서 양쪽을 같은 위치에 놓고 쌍방의 마땅히 행할 바를 말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부모에게 자녀들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가르침이나 마찬가지였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며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면 자녀는 말씀의 능력 안에서 바르게 자라게 됩니다. 부모의 불완전한 교육 철학과 어떤 성품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우리는 가정 안에서 말씀을 자녀들에게 많이 노출시켜야 합니다.

6. 5-9절은 종(피고용인)과 상전(고용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생활신앙이 이루어지는지 말씀해주십니다. 종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야 합니다. 상전이 보든 안보든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맡은 바를 성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듯(5절) 그렇게 말입니다. 그럼 주인(고용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자신의 지위나 돈으로 종들을 지금으로는 직원들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상전 앞에서는 자신이나 종들(피고용인) 모두가 동등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고 존중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일터에서 일할 때 고용주나 피고용인 모두는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터에서도 코람데오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7. 이렇듯 성령충만의 영역은 교회, 가정, 일터를 포함한 삶의 전 영역입니다. 교회에서만 잘하고 가정과 직장생활에서 인간관계가 무너지면 결코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생활신앙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말씀의 동역자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삶의 전영역에서 성령충만하여 여러분의 아름다운 신앙이 문자 그대로 생활화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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