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신실함] 說.來臨 묵상. 찬스가 왔다고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삼상 26장)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하나님의 뜻] [신실함] 說.來臨 묵상. 찬스가 왔다고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삼상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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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래임 성경묵상 [신실함] "찬스가 왔다고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듯, 다윗은 사울을 두번이나 살려줍니다. 첫 번째는 엔게디 광야 동굴에서(삼상 24장), 그리고 두 번째는 십 광야에서(삼상 26장)입니다.
다윗은 첫 번째 사울을 살려준 후에 여전히 깨름직하지만 '설마설마' 했던 것 같습니다. 삼상 26장 4절,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제겐 이 표현이 참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과연'이란 표현을 통해 다윗의 '설마설마'했던 마음이 드러나는 듯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완벽한 찬스에서 한번 살려줬는데, "인간이라면 설마 또 나를 죽이러 오겠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이 정말 또 자기를 죽이러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도 삼천명 군사를 데리고 말입니다. 이정도면 레알 진심인 거죠.
그런데, 이번에도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완벽한 찬스를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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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1. 삼상 26장 12절(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의 기록으로 보아 다윗은 충분히 "아, 이거슨 하나님께서 이제는 사울을 제거해도 된다는 싸인이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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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2. 게다가, 잠들어 있는 사울의 머리 곁엔 '창'이 땅에 꽂혀 있었습니다. 이것도 사울을 당장 제거하라는 하나님의 싸인으로 받기에 참으로 적절한 풍경이 아니겠습니까?
(삼상 26: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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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3. 게다가 무엇보다, 다윗과 함께 사울의 진영에 들어간 아비새는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26: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다윗 입장에선 손 안대고 코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것이 참 깨름직했는데, 아비새가 대신 죽여주겠다는 겁니다. 이건 거의 복음입니다.
자기 손엔 꺼름직한 피를 안 묻혀도 되고, 십년여의 처절한 도망자 삶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제 눈만 한번 딱 감으면 됩니다. "아, 난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 라든지, "난 반댈세, 하지만 네 뜻이 정녕 그렇다면... 네가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라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모른척 아무말 없이 슬쩍 자리만 피했어도, 아비새는 분명 사울을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입니다.

이전보다 난이도가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누가봐도 완벽히 마련된 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환경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그 상황을 해석합니다. 그리곤 이번에도 역시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울을 다시 놓아줍니다. 다윗은 그렇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시험 난이도를 극복해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스스로 주권자가 되는 다른 나라의 왕들과는 전혀 다른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는 '청지기직'입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다윗은 머지않아 곧 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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