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 춤추는 예배자 다윗 (0423.2023.나들목비전교회 주일설교 요약)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예배자] 춤추는 예배자 다윗 (0423.2023.나들목비전교회 주일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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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예배자 다윗 (0423.2023.나들목비전교회 주일설교 요약)
1.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스스로 자격 있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의 義는 웃사의 것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義를 옷입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자격 없지만, 은혜의 초청장을 받았기에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The question is not why did God kill Uzzah but rather why does he let us live? (Rabbi, Joe Shu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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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닌, 하는 것입니다.
(삼하6:16)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춤추는 예배자였습니다. 그때 다윗이 입은 옷은 왕복이 아닌 예배자의 옷, 에봇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그저 '예배자'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미갈은 그저 멀리서 그 예배를 내.다.보.는 '예배 관람객'이었고, 나아가 다윗의 예배를 평가하는 '예배 평론가' 였습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예배를 연극에 비유한다면, 예배의 유일한 관객은 하나님 한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습관을 따라 예배를 본다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예배를 보는 분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예배 시청자, 예배 관람객, 예배 구경꾼들은 결코 다윗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온맘과 온몸으로 기뻐하는 춤추는 예배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예배 채점자, 예배 평론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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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배는 받기 위함이 아닌, 드리기 위함입니다.
다윗이 춤추며 예배하던 언약궤가 돌아오는 '그 길'의 풍경을 상상해보십시오. 다윗은 언약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걸을 때마다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삼하6:13). 누군가에겐 분명 이러한 예배의 모습은 번거롭고 귀찮은 것이며, 시간과 물질의 낭비로 여겨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가 그 무엇보다 소중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우리의 면류관(왕관)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드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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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원 해결 받으려 교회에 가지 않습니다. 거기는 관공서입니다. 우리는 감동 받으려 교회에 가지 않습니다. 확률적으로 나훈아 콘서트 가시는 것이 더 낫습니다. 우리는 위로받거나 치유받으려 교회에 가지 않습니다. 교회는 상담소나 병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역하러 교회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이걸 자주 헷갈리곤 합니다. 우리는 좋은 말씀 들으러 교회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 목적이라면 댁에서 유튜브 시청을 추천드립니다.
 
"우리는 오직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갑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왕의 옷을 벗고 예배자의 옷을 갈아입었던 다윗, 오직 자신의 왕 앞에서 춤추는 예배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했던 다윗, 그 다윗을 하나님은 너무나도 기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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