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來臨 묵상. (예배). 삼하 6:11-23 "예배자입니까?"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說.來臨 묵상. (예배). 삼하 6:11-23 "예배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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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예배). 삼하 611-23 “예배자입니까?”

 

예배가 기준이다.

1. “어느 시대에나 신자의 수준을 능가한 예배를 드린 적 없고 예배의 수준을 능가하여 세상이 변화된 적이 없다.” 윌리엄 템플의 말입니다. 예배가 기준입니다. 예배는 신자됨과 교회됨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만큼 믿고, 우리가 예배하는 만큼 삽니다.

 

예배는 드림이다.

2.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섯걸음마다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13). 여섯걸음마다 제사한 것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살진 송아지를 드리는 것은 누군가에겐 낭비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보다 소중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시간과 물질을 통한 정성과 중심을 드림에 있습니다.

 

예배는 기쁨이다.

3. 언약궤의 귀환 앞에 다윗은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에겐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큰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빠,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언제나 기쁨으로 반겨줍니다. 그 때 부모는 행복을 느낍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기뻐하신 이유는 다윗의 도덕성,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그토록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다.

4. 그러나 미갈은 춤을 추는 다윗을 업신 여기며 비웃었습니다(20). 미갈의 이러한 마음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요?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창으로 내다보다가! 미갈은 하나님의 임재를 그저 창 밖으로 내다보던 예배의 구경꾼이었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구경꾼인가? 예배자인가?

5.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로 우리의 예배가 변화를 맞이한지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대면 예배-비대면 예배, 온라인 예배-현장 예배의 장단점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예배가 맞습니까?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이든 현장에서든 우리는 예배의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은 예배자입니까? 미갈과 같은 예배의 구경꾼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는 예배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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