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來臨 묵상. (그리스도인의 삶). 삼하 10장 1-19. “은총, 하나님 나라와 인간 나라의 경계”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說.來臨 묵상. (그리스도인의 삶). 삼하 10장 1-19. “은총, 하나님 나라와 인간 나라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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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臨 묵상. (그리스도인의 삶). 삼하 101-19 “은총, 하나님 나라와 인간 나라의 경계

 

1.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었습니다. 다윗은 조문단을 보내 나하스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그런데 2절의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라는 표현을 보면, 다윗의 조문단 파견은 단순한 애도의 목적 그 이상의 호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 8장을 보면 당시 다윗의 군대는 주변국들을 하나하나 무릎 꿇릴 정도로 막강한 위세를 떨쳤습니다. 암몬도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암몬 왕 나하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문단을 보내는 것을 계기로 그 나라에 은총을 베풀려 했습니다. 다윗과 나하스 사이에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경은 정확히 말해주지 않지만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같이 하리라”(2)는 다윗의 말을 통해 과거 다윗이 나하스에게 은혜를 입었었고, 그 은혜를 갚으려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이 같은 다윗의 호의는 매몰차게 거절당하게 됩니다. 새로운 왕 하눈의 신하들이 다윗이 그런 호의를 그냥 베풀 리가 없다. 분명히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조문단이 아니라 스파이다라고 하눈에게 고했고, 하눈은 신하들의 그 생각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조문단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줍니다(3-5).

 

3. 사무엘하는 인간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해서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심없이 은총을 베풀고, 그 은총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은총의 나라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직전 장인 삼하 9장에 나옵니다. 다윗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에게 조건없는 은총을 베풀어 그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은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하며 겸손히 그 은총을 받고 감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조건없는 은총을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그림자이고, 므비보셋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나라는 은총을 베풀 줄도, 받을 줄도 모릅니다. 인간의 나라가 잃어버린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는 바로 은혜입니다. 다윗이 은총을 베풀려 하자, 인간 나라의 신하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하여 의심합니다. 인간의 나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조건 없는 은혜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 다윗의 은총을 멸시한 하눈의 암몬 자손들은 아람사람들을 동맹군으로 끌어들여 다윗의 군대를 대적합니다. 결과는 대패였습니다. 삼하 10장의 마지막절, 19절은 이렇게 진술합니다.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아람이 암몬을 도왔던 이유는 의리, 호의, 은총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나라는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어제의 친구가 얼마든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다윗의 군대의 강력함 앞에 도무지 승산이 없자, 암몬을 도우러 왔던 아람은 암몬을 주저없이 버립니다.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이익이 사라지면, 다시는 도우려 하지 않는... 비정한 듯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세상 나라의 모습입니다.

 

5. 은총!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 그 경계선엔 은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정한 인간 나라의 경계 안에서 조건 없는 은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만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정당한 댓가의 주고 받음과 정확한 셈법으로 경영되는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에게 먼저 맛보게 하신 조건없는 하나님의 은총을 서로에게 베풀고, 서로가 의심없이 오직 감사함으로 그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의 교회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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