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래임 [계 1:1-8] "위로, 소망 그리고 도전" (요한계시록 개관)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설래임 [계 1:1-8] "위로, 소망 그리고 도전" (요한계시록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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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묵상 계 1:1-8

[설래임 .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위로, 소망 그리고 도전

 

편지, 요한계시록

1. 요한계시록은 편지입니다. 편지란 발신자와 수신자의 독특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은 제 3자가 편지를 바르고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공유한 고유의 상황, 언어, 문화, 역사 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먼저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처한 상황과 편지를 보낸 발신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해야만 합니다.

 

수신자들의 상황과 기록 목적

2. 요한계시록은 당시(AD 90-100년경) 초대 교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주신 편지글입니다(4). 당시 교회는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네로 황제에 의해 시작된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는 네로 황제는 이미 퇴위했지만 초대 교회는 여전히 새로운 황제 도미티안(도미티아누스)에 의해 말할 수 없이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은 위축되고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따뜻한 위로와 강력한 소망이 아니었겠습니까? 핍박의 고통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강력한 소망을 주시기 위한 책(편지)이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오해를 푸세요.

3. 요한계시록을 오해하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자주 오해되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미지는 암호 혹은 비밀문서’, ‘인류 종말에 대한 예언’, ‘666으로 대표되는 무섭고 두려운 묵시등등 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요한계시록에 내포되어 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해 두려워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가 결코 아닙니다. 바로 이 점에 대한 오해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무섭고 두려운 심판을 받을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어둠의 세력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핍박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방되고 회복되는 기쁨의 날인데, 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보며 무섭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까? 오히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며 성도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어려움 속에서 위로받고, 장래의 강력한 소망 안에 더욱 강하고 담대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위한 편지라면 과연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고, 풀 수 없는 암호(Secret Code)로 메시지를 주셨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해석하기에 어려운 책임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성실하게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면 얼마든지 우리에게 활짝 열린 메시지인 것입니다.

 

666은 무엇인가? (참조: 이필찬 교수, 요한계시록 강해)

4. 요한계시록을 오해하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은 그 유명한 ‘666’일 것입니다. 666은 계시록 13장을 보면 짐승의 이름, 그 이름의 수’(13:17), ‘짐승의 수, 그것은 사람의 수’(13:18)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짐승은 다니엘서(요한계시록이 많은 상징을 빌려온 성서)를 보면 세상세력이었습니다. 짐승의 두드러진 특징은 파괴적인 폭력성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세력은 언제나 파괴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짐승 같은 세상권력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로마의 황제들입니다. 그렇다면 666은 구체적으로 무엇 혹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얼마전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666을 유럽연합, 컴퓨터, 악마의 화신이 된 어떤 특정한 인물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근래에는 많은 분들이 666을 베리칩(Veri Chip) 혹은 바코드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무지와 무식이 자신의 욕망에 기인한 열심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전형적 폐단입니다. 666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앞서 666은 짐승같이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모든 세상권력의 숫자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666이란 숫자일까요?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의 성서 언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각 알파벳마다 고유의 숫자가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히브리 사람들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의 알파벳에 부여된 숫자로 이름을 대신하여 부르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관습을 게마드리아(gematria)라고 불렀습니다. 게마드리아를 역으로 적용하여 당시 교회를 향해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박해를 가했던 세상권력자(황제)를 찾아보면 그가 바로 네로 황제였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네로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음역해 그 이름의 알파벳을 더해보면 정확히 666이 됩니다. 오늘 우리에겐 다소 복잡한 계산과 해석이 필요하지만, 이 편지를 받고 있는 당시의 교회는 666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666의 실체는 짐승같이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의 수, 세상권력의 상징,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황제들의 대표격인 네로 황제라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

5. 요한계시록 13장은 666, 짐승은 용(사탄을 상징)으로부터 권세를 받았다고 가르쳐줍니다. 네로는 죽었고 로마황제들 역시 역사에서 이미 사라졌지만, 사단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세상권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려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단코 오른손에나 이마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 명령은 그들을 지배하려 했던 짐승(세상권력)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노예들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이마나 오른손에 주인의 고유한 표를 새기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 노예가 누구의 소유인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즉 이마나 오른손에 짐승의 표(666)를 받지 말라는 의미는 극심한 핍박과 박해 때문에 신앙을 버리고 황제숭배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666의 도전: “세상 신인가? “하나님인가?”

6. 오늘 우리 역시 동일한 신앙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 신, 세상 권력을 숭배할 것인가? 하나님만을 경배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도전입니다. 신앙을 타협하고 황제를 숭배했다면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사자굴에 던져지고, 불에 태워지고, 광야의 토굴에서 들짐승과 같이 살아가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늘 요한계시록 편지를 보내시어 조금만 더 인내하라, 힘을 내라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장래의 확고한 소망을 그들에게 부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핍박 속의 위로와 소망

7. 요한계시록은 로마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편지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어떻게 핍박당하는 성도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 계신지 보십시오.

 

1)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1).”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는 사단의 세력은 결국 망할 것이고, 어린양 예수그리스도가 승리하실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종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셔서 요한에게 먼저 계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고난의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로와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빨리 그 시간이 지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당하고 있는 그 핍박의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승리의 날이 반드시 속히 올 것이라 시작부터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견디고 힘내라고!” 말입니다.

 

2) 복을 주시기 위한 말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3)”

요한계시록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두렵게 하기 위한 협박성의 말씀이 아니라, 복을 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야만 합니다.

 

3)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8)”

요한계시록 1장은 하나님을 알파(헬라어 알파벳의 첫 문자)와 오메가(헬라어 알파벳의 마지막 문자)가 되시는 전능한 자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시작 하셨고 마무리 하실 주권자이시자,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언제라도 그렇게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전능한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소개는 하나님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메시지이십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권력이 득세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란과 핍박 속의 성도들이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붙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결단

8.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했던 박해와 핍박은 오늘 대다수의 우리에겐 없습니다.(물론 신앙의 핍박이 여전한 공산독재 국가, 이슬람 국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돈과 권력이라는 파괴적인 세상 신을 섬기라는 유혹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세상 신을 섬길 것인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것인가?” 오늘 우리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편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비록 때로는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오고, 때로는 손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위협 당할지라도 역사의 주관자시자 오늘 우리 삶의 통치자이신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굳게 결단하는 믿음의 종들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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