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說.來臨. 성경묵상. 사무엘하 6장."웃사는 죽었는데, 왜 나는" “The question is not why did God kill Uzzah but rather why does he let us live?”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은혜] 說.來臨. 성경묵상. 사무엘하 6장."웃사는 죽었는데, 왜 나는" “The question is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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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來臨 성경묵상. 사무엘하 6장] "웃사는 죽었는데, 왜 나는"

“The question is not why did God kill Uzzah but rather why does he let us live?”

 
성경을 읽을 때 한번씩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제겐 초(超)과학 혹은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아닙니다.)
삼하 6장의 '웃사의 죽음' 사건이 그 중 하나입니다.
 
웃사가 아무리 잘못했다 할지언정 꼭 그렇게 웃사가 죽어야만 할 정도로 큰 죄를 지은 것일까? .....
다섯가지 주석을 찾아보기도 하고, 신뢰할만한 여러분들의 견해를 읽어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묵상을 해보아도 솔직히 여전히 의문입니다.
 
게다가 이 언약궤의 귀환을 주도한 사람은 다윗이었고, 그 현장에 함께 간 무리의 숫자는 자그만치 3만명이었습니다. 잘못의 책임이 있다면 '웃사'뿐만 아니라 총책임자인 다윗에게도 있는 것이고,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3만명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게 맞는 거 아닐까요? 아니, 거기에 있는 그 누구도(적어도 다윗은) 손들고 ‘이거 잘못됬다.’, ‘언약궤는 수레가 아니라 레위인들이 어깨에 매야 한다. 이것이 율법이다.' 이의를 제기하고 나아가 적극 저지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웃사만 율법을 무시한 나쁜 놈이 아닌데 하나님께선 왜 웃사만 치셨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설마, 시범 케이스? ..... 에이,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와 같은 의문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답답한 중에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 루케이도 형님도 저 같은 사람 중 한 분이셨다는 겁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책 '믿음연습(Facing your giants)'을 보면, 루케이도 목사님도 이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서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자랐고 전통적인 유대 랍비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구약에 그 누구보다 능통한 조 슐람(Joe Shulam)을 찾아가 "도대체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물었다고 합니다.
랍비 조 슐람은 대답 대신 질문을 합니다.
 

“The question is not why did God kill Uzzah but rather why does he let us live?”

 
그러니까 우리가 이 사건 앞에서 정작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님께서 왜 웃사를 죽이셨나?"가 아닌,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는 살려두셨는가?" 라는 것입니다.
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웃사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정작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여전히 제게는 '웃사의 죽음' 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아, 의문이란 불신이 아닌 확신을 향해 나아가는 질문임을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조 슐람의 지혜를 따라 질문의 초점과 방향을 바꾸어보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은혜 밖에는 찾을 수 있는 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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