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래임 說.來臨 묵상] (성숙함) 단 3:13-26 '영적성숙의 두 모습'

[설래임 說.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설래임 說.來臨 묵상] (성숙함) 단 3:13-26 '영적성숙의 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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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묵상 다니엘서-6th. 3:13-26 (545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설래임 .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 영적성숙의 두 모습: ‘그리 아니하실지라도함께함

 

너희 하나님 vs 나의 하나님

1. 느부갓네살 왕은 모든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두라 평지에 60규빗(8층 높이)의 금 신상을 세웁니다. 그는 불과 얼마 전 자신의 꿈을 해석해준 다니엘에게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246-47) 고백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상을 세우고 온 나라 백성들에게 이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버리겠다고 공포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신앙 고백은 백점짜리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이 아닌 너희 하나님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갖을 수 있지만, 이렇게 쉽게 자신의 우상을 만들어 버립니다. 세상 모든 권세의 주권자, 유일하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까?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 사람은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버리겠다는 왕의 명령에 다니엘의 세 친구(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자신들은 결코 우상에 절할 수 없다 고집합니다. 이러한 그들의 신앙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2가지 귀한 영적 교훈을 받습니다.

 

고난 받는 성도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2-1. 첫째, 하나님은 고난 받는 자신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는 결박당하여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왕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분명히, 세 사람을 결박하여 풀무불에 던졌는데, 거기에 결박되지 않은 네 사람이 멀쩡하게 다니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24, 25).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위해 고난당하고, 불이익 당하는 당신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곳이 아무리 맹렬히 타는 용광로 불길 속일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풀무불 속에서도 안전히 지켜주시는 것도 은혜이지만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그 자체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성숙한 고백을 하려면

2-2. 둘째,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위해 평소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신나고 경쾌하게 찬양을 부르고 있지만, 이러한 신앙고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저희 부부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몇 개월을 정말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두 차례의 유산의 아픔을 겪었었고, 둘째 아이 임신 5개월 즘 되어 병원에 가보니 태아의 뇌에 물혹이 보인다며, 아무래도 다운증후군 같은 증상이 의심된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때 부른 찬송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가 아니라 무조건 무조건이야였습니다. 삶의 문제가 심각할수록, 고통의 농도가 짙을수록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고백을 드리는 것은 연약한 우리 인간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만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성령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성숙함이란? 자신의 고난 가운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형제의 고난 가운덴 함께함으로

3. 우리는 고난당할 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고백할 수 있는 성숙한 신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가 고난당할 때 우리는 그에게 다가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말하기 전에, 형제가 당하는 그 고난의 자리에 함께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고난 속에서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26) 간절히 기도하셨지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당한 고난 속에서는 그런 신앙고백을 요구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던져진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찾아가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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