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세상 속에서의 교회 (feat. 유발 하라리)

불평등한 세상 속에서의 교회 (feat.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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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세상 속에서의 교회 -1.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62명이 가장 가난한 36억 명의 부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가 약 72억명. 그 중에 62명이 전 인류의 부의 절반을 소유한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 / 호모데우스 중)
이런 세상은 가난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인 '오병이어'를 통해 5천명을 먹이신 우리 주님이 원하신 세상이 결코 아닐 겁니다. 세상은 5천명 먹을 것을 독식하는 것을 성공이라 부르며 그 성공을 향해 너희도 달려가라 재촉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길이 아니리라 믿습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다치더라도 교회는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교회가 그런 세상을 부러워하고 그런 성공을 추구한다면 교회는 복음 공동체의 자격을 잃어버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을 환영하고, 대접하고 있는지 항상 살펴야 할 것입니다. 불평등한 세상 속에 거하는 교회는, 교회만큼은 달라야만 합니다. 하나 넣고 5천배의 뻥튀기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영성이라면, 복음은 투자는 커녕 투기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것입니다.

불평등한 세상 속에서의 교회 -2.
유발 하라리는 의학의 개념은 혁명을 겪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20세기에 의학의 목표는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었다면, 21세기의 의학의 목표는 건강한 사람의 성능을 높이는 '업그레드'가 목표라 합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표준으로 이끄는 평등주의적 목표라 할 수 있지만, 건강한 사람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적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의학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차별, 더 심화된 차별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의학의 발달이 인류의 보편적 행복을 오히려 헤치는 것이죠.
예수님은 자신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치유하셨습니다(사53:5).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진실하게 따르는 교회, 그리스도인이라면 21세기 의학의 엘리트주의적 목표에 저항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보건과 건강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 육체의 업그레이드만을 추구하는 것은 나쁜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의학의 엘리트주의적 목표는 분명히 의료 불평등의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팬데믹을 지나오며, 이러다 교회도 평균 이상의 업그레이드 육신을 장착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되는 건 아닐지 우려됩니다. 사실 이미 그런 분위기는 시작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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