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 [약해도 쓰임받는] "큰 용사여! 제가요?" (Flawed Heroes)
(Flawed Heroes) "큰 용사여! 제가요?"
파잔(pajan) 코끼리 길들이기
1. 태국의 유명한 관광산업 중 하나가 코끼리 관광입니다. 코끼리 관광을 위해선 야생성이 매우 강한 코끼리를 먼저 길들여야 하는데, 그 과정을 ‘파잔(pajan)’이라고 합니다. 파잔의식에 끌려나오는 코끼리는 생후 4-5년 된 아기 코끼리들인데, 첫단계로 어미 코끼리와 강제로 분리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아기 코끼리는 태어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합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가 아기 코끼리를 나무 기둥 같은 곳에 가둬 묶어놓고, ‘따그러' 라 불리는 쇠꼬챙이로 이마 등을 사정없이 찍어대며 코끼리의 자의식을 완전히 짓밟는다 합니다. 보통 이 과정이 3일에서 일주일 정도 계속 되는데, 절반 이상의 코끼리는 이 과정 중에 정신이상이 되거나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합니다. 겨우 살아남은 코끼리는 이제 야생본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인간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의식만 남게 된다고 합니다.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한 잔혹한 파잔의식의 핵심은 결국 ‘두려움’을 심어주는 겁니다. 파잔의식이 끝난 코끼리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코끼리는 지구상 생물 중 가장 쎈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에 굴복한 코끼리는 이제 평생을 낙심하고 포기하며 오직 복종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두려움이란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선 이 두려움의 사슬을 끊어내야 합니다.
Flawed Heroes 결함있는 영웅들
2. 민족의 구원자로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사기 영웅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했습니다. 강하고 신실한 사람들만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하고 신실하지 못한 사람도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문제는 길들여진 코끼리처럼 나는 연약하기에 할 수 없다는 두려움입니다.
- 옷니엘은 최고의 명문가라는 배경이 있었지만 그가 쓰임받은 나이는 은퇴연령이 훌쩍 넘은 80대의 나이었습니다. 젊음의 에너지가 있어야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왼손잡이 사사 에훗은 베냐민, 즉 오른손의 아들들 중 오른손에 장애가 있었던 평균에도 못미치는 사람이었습니다.
- 삼갈은 단 한 줄짜리 인생이었습니다. 이력서에 쓸게 없는 초라한 인생, 손에 든 무기라곤 소모는 막대기 하나 뿐인 단촐한 인생도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 드보라는 남성들이 모든 기득권을 갖고 있던 시대에 쓰임받은 여성 사사입니다. 그녀의 이름 뜻은 꿀벌이었습니다. 그 때의 군대장관은 벼락이란 이름 뜻을 갖고 있던 바락이었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바락은 드보라를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꿀벌은 벼락보다 강합니다. 기드온은 모두가 두려워할 때 똑같이 두려움을 느끼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큰 용사로 부르십니다.
- 소심쟁이 기드온이 큰 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기드온의 3백 용사입니다. 기드온은 전쟁을 위해 3만 2천명을 동원했지만 하나님은 2번에 걸쳐 3백명만 남기십니다. 진정 큰 용사는 수가 아닌 주를 의지하는 사람임을 증거하는 숫자가 바로 3백입니다.
-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 어린시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배다른 형제들에게 쫓겨난 홍길동의 아픔과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둡고 불행한 과거, 버려진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도 하나님은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 사사기의 마지막 삼손은 자기 정욕을 위해서라면 하나님과 동족들에게 대한 신실함도 얼마든지 엿바꿔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시그네쳐 머리카락을 다 잘리고, 두 눈 마저 뽑혔을 때 삼손은 비로소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삼손은 비참한 자신의 인생 끝에서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부르짖으며 철저히 하나님의 힘을 의지합니다. 그 때에 삼손은 자기 인생 중 어떤 때보다 크게 쓰임받게 됩니다.
"큰 용사여! 제가요?"
3. 약점투성이어도 괜챃습니다. 배경이 안좋고,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내 발목을 붙들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인생의 무기가 막대기 하나라도 괜찮고,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 인생이라도 괜찮습니다. 어제까지 실패했어도 상관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약해도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난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쓰임받을 수 없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낙심과 포기와 두려움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 모든 사슬을 끊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든 큰 용사로 부르시면 "네? 제가요? 해서도, 네? 쟤가요?"해서도 안됩니다. 난 연약해서 못한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자는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붙드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는 용사가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쓰임받을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