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 인터러뱅(Interrobang) ?!
[History 묵상집 2월 특별 기고문]
-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
시편 8편. ?! 인터러뱅(Interrobang)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유니코드 부호 U+2048, 물음느낌표(⁈)를 인터러뱅이라 합니다. 1962년 미국 광고 회사 사장인 마틴 스펙터가 ‘수사학적 질문’의 라틴어 ‘interrogatio’와 감탄사를 표현하는 인쇄 은어 ‘bang’을 조합해 ‘인터러뱅’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물음표와 느낌표의 두 의미를 동시에 나타내는 이 문장 부호는, 별도의 수식 문장 없이 단독으로 쓰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물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예외 없는 시작입니다. 물음 없이 얻을 수 있는 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묻는다는 행위만큼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묻는 행위는 인간만의 특질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묻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독수리도, 바다의 고래도, 밀림의 사자도, 그 어떤 위대한 피조물도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묻지 않습니다. 이 질문은 듀스만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끝없이 묻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존재의 심연에 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은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 분명한, 경이로울만큼 빼곡한 별들로 채워진 고대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탄하며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사람’(에노쉬-연약한 존재)무엇이기에, ‘인자’(벤 아담-티끌같은 존재)가 무엇이기에 이 위대한 창조주가 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것일까?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 티끌 같이 작은 존재들에게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감히 다스릴 수 있는 영광과 권세를 주신 것일까? (4-8절).
경이로운 자연을 바라보며 일어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다윗의 물음표가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절대자를 향하자 홀연 느낌표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질문의 모든 답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이름을 찬양하며 온 땅에 선포하기 위함임을 말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생각하는 물음표가 자동차의 브레이크라면 행동하는 느낌표는 액셀러레이터”입니다. 멈추어 하늘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멈추어 자신보다 큰 존재에 대해 질문해야 합니다. 그 질문을 통해 광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땅의 티끌같은 자신을 존귀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을 온 땅에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