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교정][은혜] 꼭 그렇게 웃사를 죽이셔야만 했나요?
꼭 그렇게 웃사를 죽이셔야만 했나요?
1. 성경을 읽다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웃사의 죽음’이 대표적 예입니다. 아무리 웃사가 잘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꼭 그렇게 죽이셔야만 했을까? 여러 주석을 찾아보고 아무리 묵상을 해보아도 솔직히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언약궤의 귀환을 주도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리고 삼하 6:1을 보면 다윗이 그 현장에 함께 간 무리의 수가 자그만치 3만명입니다. 잘못의 책임이 있다면 다윗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고, 그 현장에 함께 한 3만명 역시 책임을 면치 못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다윗도, 그중 누구도 손들고 ‘이거 잘못됬다.’, ‘언약궤는 수레가 아니라 레위인들이 어깨에 매야 한다.’ 그것이 율법이다라고 저지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웃사만 율법을 무시한 나쁜 놈이 아니라, 다 똑같이 나쁜 놈인데 웃사만 죽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진짜 질문: 그들과 우리는 왜 살려 두셨을까?
2. 믿음연습(Facing your giants)이란 책을 보면,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 역시 이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전통적인 유대 랍비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구약에 능통한 조 슐람(Joe Shulam)에게 도대체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물었다 합니다. 그런데 조 슐람은 대답 대신 오히려 질문을 합니다. “The question is not why did God kill Uzzah but rather why does he let us live?”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 웃사를 죽이셨나가 아니라, 왜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두셨는가? 라는 것입니다.
3. 언약궤의 귀환을 진두지휘하던 다윗도, 그 현장에 있던 삼만명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지 않는 우리 모두도 웃사와 함께 죽는 것이 마땅합니다. 왜 웃사만 죽었는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내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 은혜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주변의 웃사를 비난합니다. 마치 그 혼자만의 잘못인 것처럼 그를 정죄합니다. “그러니까 벌 받은 거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 아니겠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은 웃사와 다르다는 교묘한 우월감의 표현입니다.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웃사는 하나님의 공의로 죽임을 당한 것이고, 그 현장의 다윗과 삼만명과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림을 받은 것입니다. 죽어 마땅한데 은혜를 입어 살려주셨으니, 이제 더욱 주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바르게 그리고 충성스럽게 주님을 모셔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