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GBC.미주복음방송. 권도근목사의 설.래임說.來臨.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인간관계] GBC.미주복음방송. 권도근목사의 설.래임說.來臨.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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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C.미주복음방송. 권도근목사의 설.래임說.來臨 (원고 중 일부)
[인간관계]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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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랍비이자 종교철학자인 마틴 부버라는 분이, ‘나와 너’라는 책에서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라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마틴 부버는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관계의 창조’였다고 합니다. 그의 말대로 태초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독처하는 것이 못하니 하시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생육하고 번성하여 다스리라.*섬기라)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두 깨어지지 않은 온전한 관계의 맺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태초의 에덴은 낙원이었던 것입니다.
마틴 부버는 그렇게 창조의 중심에는 ‘관계’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인간관계를 2가지로 분류하고 구분합니다. 첫째는 ‘나와 그것’의 관계이고, 둘째는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나의 욕심’이 바탕이 된 관계로, 상대방을 물건처럼 기능적으로만 보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딱 이러한 관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죠. 나에게 필요하거나, 뭐라도 나에게 도움이 될 때에만 관계가 성립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와 그것’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가 완전히 동등하므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내가 귀한 만큼 너도 귀하다라는 전제의 바탕 위에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이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성경의 가치와 일치하죠.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을 땐 마틴 부버의 용어를 빌리면 ‘나와 너’의 관계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즉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원래는 ‘나와 너’의 상호존중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어진 것입니다. 나만이 중요하게 되고,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자연도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나의 유익과 이익을 위한 ‘그것’으로 전락해버린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우리가 이 인간관계를 처음 창조의 때처럼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기쁨과 행복을 선사해주는 그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나와 너 사이에 오신 예수님을 서로가 바라보며 한걸음씩 다가가, 결국 예수님 안에서 서로 만나는 것 뿐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은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과 요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과 요나단은 상식적으로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는 ‘정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 20: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는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다윗과 요나단.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정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나와 너 사이에 계신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았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남편, 아내, 자녀 사이에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의 교역자 혹은 동역자들 사이에는 누가 계십니까? 네! 하나님이 계십니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들은 I See You 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직접 보아서는 인간관계를 바르게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I see you through Jesus! 예수님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와 너 사이에 계신 예수님을 함께 바라볼 때에 우리의 인간관계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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