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GBC.미주복음방송. 권도근목사의 설.래임說.來臨.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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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5 13:57
GBC.미주복음방송. 권도근목사의 설.래임說.來臨 (원고 중 일부)
[인간관계]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
마틴 부버는 그렇게 창조의 중심에는 ‘관계’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인간관계를 2가지로 분류하고 구분합니다. 첫째는 ‘나와 그것’의 관계이고, 둘째는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나의 욕심’이 바탕이 된 관계로, 상대방을 물건처럼 기능적으로만 보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딱 이러한 관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죠. 나에게 필요하거나, 뭐라도 나에게 도움이 될 때에만 관계가 성립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와 그것’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가 완전히 동등하므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내가 귀한 만큼 너도 귀하다라는 전제의 바탕 위에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이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성경의 가치와 일치하죠.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을 땐 마틴 부버의 용어를 빌리면 ‘나와 너’의 관계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즉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원래는 ‘나와 너’의 상호존중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어진 것입니다. 나만이 중요하게 되고,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자연도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나의 유익과 이익을 위한 ‘그것’으로 전락해버린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우리가 이 인간관계를 처음 창조의 때처럼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기쁨과 행복을 선사해주는 그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나와 너 사이에 오신 예수님을 서로가 바라보며 한걸음씩 다가가, 결국 예수님 안에서 서로 만나는 것 뿐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은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과 요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과 요나단은 상식적으로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는 ‘정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 20: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는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다윗과 요나단.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정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나와 너 사이에 계신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았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남편, 아내, 자녀 사이에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의 교역자 혹은 동역자들 사이에는 누가 계십니까? 네! 하나님이 계십니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들은 I See You 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직접 보아서는 인간관계를 바르게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I see you through Jesus! 예수님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와 너 사이에 계신 예수님을 함께 바라볼 때에 우리의 인간관계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