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추수감사] Thanks-Taking DAY(추수강탈절) ? @울림과 어울림의 감사
남아프리카 공화국 성공회의 대주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함께 기도하자!' 하였고 우리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우리의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데즈먼드 투투의 말은 그동안 아름다운 미담으로만 포장되어 왔던, 우리 기독교 선교 역사의 추악했던 민낯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들의 영혼을 사랑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들의 자원과 그들의 소유를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으로 우리 기독교의 선교 역사는 얼룩져 있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워 숨기고 싶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그것이 진실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어김없이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 역시 이러한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Thanksgiving Day-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영국으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1620년 혹독한 겨울, 길고 위험한 항해 끝에 102명의 유럽인들이 메사추세츠 플리머스 인근 프로빈스타운 해안에 상륙합니다. 102명 가운데 30여명은 경건한 청교들이었나, 65명은 신대륙에서의 일확천금을 노리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들 중 절반은 죽었고, 나머지 사람들 대부분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을 발견한 플리머스 원주민 왐파노아그 부족이 그들에게 식량과 겨울 침구류 등을 나눠주며 그들을 돌보아 주게 됩니다. 나그네와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미덕과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왐파노아그 부족은 또한 그들에게 전통적인 사냥법을 가르쳐 주고, 곡물의 씨앗을 나눠주며 재배법 역시 가르쳐 줍니다. 그렇게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한 해를 무사히 보내게 된 유럽인들은 이듬 해 가을 감격적인 첫 추수를 하게 되고,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원주민들을 초대해 감자, 호박, 칠면조 등의 음식을 나누며 함께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의 이야기는 그러한 훈훈한 미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많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백인들의 정착촌은 점점 넓어지게 되고, 그 넓이의 확장만큼 사람들의 탐욕은 커져만 갔습니다. 탐욕에 눈이 먼 백인 이주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힘으로 빼앗고 그들의 식량과 소유를 잔인하게 약탈합니다. 그들이 개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학살까지 자행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들’이라 불렀던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기는커녕 잔혹한 ‘약탈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모든 악한 일들을 그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했다는 것입니다. God bless America.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주셔서 우리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 풍요의 땅에 새로운 주인이 되어 이것들을 다 누리게 되었다는 자의식이 그들에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풍요와 번영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 감사의 결정체가 바로 미국의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쪽에선 축제의 날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비탄과 비극이 소환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미국 전체가 추수의 감사로 떠들썩 하는 동안, 같은 땅 어느 한 구석에선 이 날을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가 아닌 ‘추수강탈절(Thanks-Taking DAY)’이라 고쳐 부르며 과거 백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무참히 죽임 당했던 자신들의 조상들을 추모하며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추수감사절이 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섬에 모여 이렇게 목소리를 높입니다. “식량을 나눠주며 백인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기력을 차린 백인들은 원주민을 배반하고 땅을 빼앗았다.”
바야흐로 감사의 계절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념하며 무엇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혹시 단지 더 많은 추수와 소유 그리고 그로 인한 더 큰 감사가 이 날을 기념하는 우리의 기대와 목적입니까? 혹시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정확히 400년 전 이 미국 땅에 건너와 더 많은 추수와 소유를 위해 원주민들의 땅과 소유를 잔인하게 빼앗었던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었던 그때의 그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입니다. 추수강탈절(Thanks Taking Day)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감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풍성한 추수의 은혜에 대한 울림의 감사와 동시에 이웃과 함께 하는 어울림의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성도의 참된 감사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드림’으로 표현되는 ‘울림의 감사’요, 우리의 추수와 그로 인해 소유하게 된 것들을 연약한 이웃들에게 흘려보내는 그래서 그들과 함께 추수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어울림의 감사’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