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냄] 두 동산, 두 아담의 길
롬5:19, 고전15:22 "두 동산, 두 아담의 길"
1. 성경교사들의 교사로 존경받는 존스토트 목사님은 그의 유명한 저서인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성경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해 줍니다. 성경은 어떤 면에서 두 개의 동산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동산은 에덴이고, 두 번째 동산은 겟세마네입니다. 에덴은 낙원이란 뜻이고 겟세마네는 올리브압착기란 뜻입니다. 에덴은 그 이름처럼 기쁨의 장소이고, 겟세마네는 고통과 고뇌의 장소입니다. 에덴의 동산지기는 첫 사람 아담이었고, 겟세마네의 동산지기는 마지막 아담(고전15:45)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에덴의 동산지기 아담은 그곳에서 불순종하였고 그 결과 낙원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의 동산지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온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2. 첫 사람 아담이 저지른 죄의 본질은 자신이 동산의 주인이 되려 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모든 것을 언제든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 하셨을까요? 그것이 특별이 아까워서가 아니셨습니다. 동산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표시였습니다.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참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동산에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호의(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첫 사람 아담은 어느새 그것이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지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니 한 가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했음을 지적합니다. 즉 동산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 자신이 누리는 것들의 주인이 되려 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의 근원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동산,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의 이야기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낙원(천국/하나님 나라)을 되찾아주시길 원하셨습니다. 두 번째 동산이 놓여지고, 그곳에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을 만회할 마지막 아담을 보내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9절은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하였습니다. 대표성의 원리로 첫 번째 아담의 순종치 않음으로 온 인류가 죄인이 된 것 같이, 똑같이 마지막 아담이 두 번째 동산에 나타나 첫째 아담이 실패했던 그 순종의 문제에서 승리하여 온 인류가 다시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첫째 아담은 먹지 말라는 순종의 요구를 받았고, 겟세마네동산의 마지막 아담은 먹으라는 순종의 요구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아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리브압착기에서 올리브 기름을 짜내듯 고통을 짜내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로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결과 우리 인류는 다시 낙원으로 돌아갈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4. 이렇게 성경은 두 개의 동산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되찾은 에덴은 은혜와 기쁨과 평안이 충만한 낙원이라는 점 외에도 매우 특별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에덴동산에서 네 강줄기가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온 세상의 물줄기의 근원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와 온 세상의 물줄기가 되는 그 물은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서는 온 세상을 소성케 하는 생명수라 표현합니다. 에덴은 은혜의 물줄기, 생명수를 가두어 놓는 곳이 아닙니다. 에덴은 은혜의 생명수를 온 세상에 흘려보내는 곳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되찾은 에덴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마지막 아담의 순종하심으로 인해 에덴으로 들어와 다시 마실 수 있게 된 은혜의 물줄기, 생명수 그 복음을 우리는 혹시 우리끼리만 즐겁게 마시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는 저수지가 아니라 댐이 되어야 합니다. 수문을 열고 복음의 은혜를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와 성도가 순종해야 할 에덴을 되찾은 자들의 사명입니다.
5. 우리에게는 첫 사람 아담과 같이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이 실패했었다고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자유 의지를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첫 아담의 길을 걸으며 눈에 보기 좋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들을 쫒으며 자신만을 위한 불순종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둘째 아담, 그리스도의 길을 쫓으며 나의 의지를 주님의 주권에 복종시키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며 나아가시겠습니까? 우리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에덴을 되찾은 말할 수 없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나들목비전 교회는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우리 안에만 가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에덴에 들어와 있습니다. 은혜와 축복의 수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주신은혜의 복음을, 축복을, 사랑을 아낌없이 교회 밖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에덴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추수감사절 헌금을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개척교회인 우리로썬 한 주 한 주의 헌금이 참으로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 에덴의 길을 걷고자 추수감사절의 특별헌금 전부를 교회 밖으로 흘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교우들이 기꺼이 동의해주시고 함께 기뻐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주일 오후, 개척 교회로서는 적지 않은 $1,490불의 헌금을 지난달 태국 땅에서 순교하신 선교사님의 가족들에게 보내려 결의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 교회 안에 날마다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은혜를 가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에덴의 길, 어렵고 힘들지만 끝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마지막 아담의 길에 우리 교회가 각 성도가 항상 최선을 다해 그 길 위에 서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