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성령충만] "신앙생활, 생활신앙" #CDTV_메세지_방송_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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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생활신앙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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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가정에서의 삶을 가정생활이라 부릅니다. 직장, 사회에서의 삶은 사회생활이라고 부릅니다. 교회에서의 삶은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 보통은 교회생활이라 부르지 않고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반은 맞기도 하고 반은 틀리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이란 교회생활뿐 아니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진실함은 교회안에서만이 아닌, 생활의 전 영역에서 비로소 증명되는 것입니다.

 

2. 에베보서 5장을 보면, 크리스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성령충만임을 가르쳐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충만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를 올바르게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성령충만하게 되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되는데, 그 피차 복종의 관계는 부부관계로부터 시작해서,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로 나아가고, 그리고 더 나아가 종과 상전의 관계로까지 확장되게 됩니다. 역순으로 정리해보면, 가정생활이던 사회생활이던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피차 복종이라는 것이며, 모든 관계에서 피차 복종하려면 우리가 성령충만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사람은 가정생활도, 직장생활도, 모든 영역의 사회생활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종종 오해를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만 신앙생활이라 착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죠. 그것은 철저한 오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령충만은 신자의 삶, 전 영역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기 때문에, 성령충만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생활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4. 여러분은 혹시 성경전체에서 최초이자,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기록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출애굽기에 나오는 브살렐이란 사람입니다. 브살렐은 출애굽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 craftsman(장인)으로 활약한 인물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구약에서 문자적으로 유일하게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기록된 사람이 모세가 아니고, 대제사장 아론도 아니고, 성막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도 아닌 장인 브살렐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자주 오해하듯, 성령충만은 소위 우리가 교회에서 사역이란 이름을 붙여놓은 영역에서만 필요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사역, 선교사역, 목회사역, 찬양사역, 기도사역에만 성령충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해야 할 영역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우리 삶-생활의 전 영역입니다. 가정에서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고, 일터에서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교회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할 때만 성령충만하고, 집에 갈 땐 교회에 성령을 반납하고 돌아가는 일은 이제 그만하셔야 합니다.

 

5.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다 화형당한 영국의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는 더 좋거나 더 낮은 일이 없다. 물을 길어 붓는 일이나 그릇을 닦는 일이나 구두장이나 사도나 모두가 똑같다. 그릇을 닦는 일이나 말씀을 전하는 일이나 똑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6. 교회생활만 거룩하고, 사역이란 이름표가 붙은 일들만 거룩한 일이 아닙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우리 모두가 교회 사역자가 되고 목사가 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저와 같은 목사들만 가득한 세상이라면 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식당에 갔는데 주방에서 목사가 요리하고, 치과에 갔는데 목사가 여러분의 충치를 뽑으려 나오고, 맹장이 터져 급히 병원에 갔는데 목사가 메스를 들고 나오고, 비행기를 탔는데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 기장으로 앉아 계시는 세상. 그런 세상, 너무 끔찍하지 않을까요? 광야에서 모두가 다 모세와 제사장들만 있었다면, 어떻게 그 정교한 성막이 지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7.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충만한 모세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한 장인 브살렐 같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생활 전문가가 아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충만하여 자신의 맡은 소명을 바르게 감당하는 생활신앙인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일상의 언어로 성경을 탁월하게 해석한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은 로마서 121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여러분이 이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 일상의 삶-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매일의 삶, 일상의 삶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예배요, 온전한 신앙생활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8.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정리하며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교회생활은 신앙생활의 한 영역일 뿐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내러티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생활은 생활신앙으로만 가능해집니다. 부디, 교회생활만 잘하는 프로 교인이 아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의 삶을 거룩한 헌물로 드리는 생활신앙인으로 살아가시길 축복하며 응원합니다.  



-10.29.2021 /

미주기독교일보 유튜브채널 CDTV에서 <교회 속 오해들> 이란 주제 중 하나를 맡아 녹화했던 원고 중 일부입니다. 여러 주제들에 관해 선택권이 있었지만, 이번에 저는 교회생활이 곧 신앙생활로 암암리에 인식되고 평가되는, '오해'를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원고의 대강의 흐름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신앙생활, 생활신앙"
1. 문제제기
신앙생활은 교회생활 훨씬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2. 성경적 논거 -신약-
엡 5-6장, 성령충만해야 할 영역은 교회 뿐 아니라 가정, 직장을 포괄한 모든 영역의 사회생활에서이다. 즉, 성령충만한 사람은 삶의 전 영역에서 '생활신앙인'이 됨이 필연적이다.
3. 성경적 논거 -구약-
(문자적으로) 구약에서 유일하게, 성경에서 최초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기록된 사람은 출 31장의 '장인(Craftsman) 브살렐'이다. 모세만, 성전 제사장들만 있었다면 성막은 결코 지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교회는 성령충만한 숙련된 '생활신앙인'들이 목사만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4. 오해풀이 전개
a. 신앙생활이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사역'이란 이름표를 붙여놓은 영역 안에서 제한된 활동이 결코 아니다. 교회사역, 선교사역, 목회사역, 찬양사역, 기도사역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니다.
b.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는 더 좋거나 더 낮은 일이 없다. 물을 길어 붓는 일이나 그릇을 닦는 일이나 구두장이나 사도나 모두가 똑같다. 그릇을 닦는 일이나 말씀을 전하는 일이나 똑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윌리엄 틴데일의 말처럼, 모든 신자의 모든 일상이 신앙생활이 된다.
c. 세상이 온통 교회고, 세상에 온통 목사만 있다면? 끔찍하다. 그런 세상이 아름답게 돌아가겠는가? 요리사도, 의사도, 자동차 정비공도, 비행기 기장도, 과학자도, 가정주부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d. "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십시오. (메시지성경 중, 롬 12:1)
5. 결론
참된 신앙생활은 성실한 생활신앙으로만 가능해진다. 부디, 교회생활만 잘하는 프로 교인의 삶은 이제 은퇴하고, 삶의 대부분의 시간과 자리를 차지하는 일상에서 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삶을 거룩한 헌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신앙인이 되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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