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브루그만, 예언자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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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브루그만, 예언자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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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적 상상력 (feat. 월터 브루그만)
마이클 프로스트와 앨런 허쉬는 <새로운 교회가 온다>에서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교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야말로 그 어떤 지식보다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한편, 월터 브루그만은 <예언자적 상상력>에서 교회가 변화하길 원한다면 반드시 Alternative Consciousness(대안적 의식)을 갖아야 하는데, 그 Key는 다름 아닌 '상상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현실의 교회는 상상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답습해온 방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충분히 감지하고 있고 또 열렬히 비판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할텐데, 현실의 교회는 거기까지 나아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모두 절대적 상상력의 빈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대부분의 상상력의 빈곤함에 처한 현실의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문제는 '상상력이 자극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교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적 의식이라는 것이 가만히 앉아 공상을 한다거나, 놀라운 대안적 통찰을 제시하는 책을 본다고 해서 막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공상은 문자 그대로 뜬 구름 잡는 것이 되기 일쑤고, 모두가 칭송하는 탁월한 책일지라도 책을 통한 상상력의 자극은 사역 현장(Context)의 이질감으로 인해 실제 적용에 있어서 명확한 한계를 갖기 때문입니다. ("아 정말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런데 그건 우리랑 안 맞어." 늘 이렇게 되는 것이죠.)  
교회 개혁은 우리 모두가 예언자적 상상력이란 통로를 통해 마땅히 동참해야 하는 일이지만 우리 모두가 체게바라 같은 태생적 혁명가일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한 시대의 지배적 문화에 이미 적응해버린 교회에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사람(월터 브루그만이 찾는 그런 사람)은 될 수 없다 생각합니다.
사실, 월터 브루그만 역시도 자신의 주장 막바지에 가서는 그런 예언자적 목회를 가능하게 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떤 탁월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 은사는 공동체를 위해 주어진 선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적 상상력을 은사로 받은 분들은 그 상상력을 (자신의 아젠다나 그가 이끄는 공동체의 활성화만을 위해서가 아닌, 공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겸손하게 그리고 책임있게 나누어야만 합니다.
우리에겐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회로 나아가는 상상력을 자극해 줄 모델이 필요합니다. 분명,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특별한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자극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어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듯 이웃 교회와 동역자들에게 그 상상력을 거침없이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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