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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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 15:25
"사람들이 뉴스를 고통의 포르노로 소비하며, 자신이 처한 안전한 자리에 만족하는 데 그치지 않기를 바라며. 평소에 보지 않았던 곳으로 눈길을 돌리길 바라며.“
"보고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대규모 구경이 되어버릴 뿐이다."
빈곤 포르노란 말이 있다. 빈곤 포르노란 모금 유도를 위한 방편으로 빈곤층의 불쌍하고 비참한 모습을 대중에게 전시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 김인정은 '고통 포르노'를 말한다. 사람들이 뉴스를 고통의 포르노로 소비한다는 안타까운 비판이다. SNS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형편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저 자극과 이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서슴없이 전시하며 소비하는 현상은 이젠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은 갖고 있으나 타인의 고통이 뉴스에 SNS에 전시될 때마다 우리는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어김없이 흥미진진한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저자 김인정은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시선 자체를 무조건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움직여주길 부탁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사유하기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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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에서 발췌)
일상을 살아가며 연민을 잊지 않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균형과 전환 사이에서 기이한 파열음이 나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라는 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반응 속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 자유를 지켜볼 수 있을지를 더 자주 곱십어보게 된다.
각자의 시선이란 잔인할 정도로 개인적이고, 우리의 망막에 고인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눈물 한 방울 내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 한구석에 던져 놓은 신문 뭉치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새로운 물건을 만들듯이, 시야 어딘가에 머무르다 펼쳐보게 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조금 더 천천히, 더 담담한 뉴스를 만드는 건 어떤가. 빨리 시선을 잡아채는 것이 반드시 변화를 약속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한 지 오래이니, 오래 걸리더라도 있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알려야 할 것을 균형 있게 생산해 내는 매체로 머무는 건 어떤가.
그러고 보면 역사가 늘 전진하고 진보한다는 세계관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세상 아닌가. 연민이라는 감정 하나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행동을 촉발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다는 걸 떠올리다 보면 생산자는 최대한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소비자는 마음을 온전히 포개는 데 또 실패했다는 패배감을 덜 느낀 채로 뉴스를 생산하고 소화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