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 기니스의 <소명-2> #소명의 왜곡에 관하여
오스 기니스의 소명(召命)
[소명이란]
1-1. 소명은 문자 그대로 부르심이다. 모든 부름(calling)의 행위에는 이미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 아무리 장난삼아 부른 무의미한 부름이라 할지라도 장난이라는 목적이 있다. 하물며, The calling-창조주 하나님의 부르심은 말할 것도 없다.
2. 오스 기니스는 소명을 일차적인 소명과 이차적인 소명으로 구분한다.
2-1. 일차적 소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한 목적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직업, 역할)로나, 어디엔가(특정 나라, 장소)로 부름받은 것 이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름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일차적 소명은 그 무엇보다 그분에 의한, 그분을 향한, 그분을 위한 것이다.
2-2. 이차적 소명은 내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 주권자 하나님의 부르심에 성실히 응답하는 그 무엇이다. 오스 기니스는 일차적 소명을 the calling(그 소명)으로, 이차적 소명을 callings(소명들)라 한다. 즉, 모든 사람이, 모든 곳, 모든 것에서 전적으로 ‘그 소명’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도전]
4. 진정한 소명은 두 가지 도전을 받는다.
첫째는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둘을 올바른 순서 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함이 소명의 불변하는 첫번째 자리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우리는 모든 곳(것)에서 바로 그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곡된 소명]
5. 그러나 소명은 종종 왜곡되고 일그러진 채로 우리에게 이해되어진다. 오스 기니스는 왜곡된 소명의 대표적인 모습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첫째, 카톨릭적 왜곡과 둘째, 기독교적 왜곡이다.
5-1. 카톨릭적 왜곡
카톨릭적 왜곡이란 하나님 백성의 삶을 두 개의 생활 방식으로 나누어, 하나는 우월하고 다른 하나는 열등하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사제, 신부, 수녀와 같은 삶(vita contemplativa/관조된 삶)을 ‘완전한 삶’으로, 그러나 상업, 농업, 병역, 가족부양과 같은 일반의 삶을 ‘허용된 삶’ 혹은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이등급의 삶’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의 출발과 결말은 결국 성속(聖俗)이원론과 붙어 있고, 필연적으로 불평등한 이층 구조를 양산하게 된다.
5-2. 개혁과 성과
이러한 소명의 카톨릭적 왜곡은 종종 중세 시대의 신비주의 신학자 ‘에크하르트’나 루터, 윌리엄 틴테일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개혁자들은 소명에 대한 총체적 관점의 회복은 비단 교회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전통사회가 근대사회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5-3. 기독교적 왜곡
그러나, 소명의 카톨릭적 왜곡을 극복하려는 개혁은 개혁을 넘어서 반대편에서의 이원론적 오류와 왜곡을 낳게 되었다. 즉, 세속적 이원론(영적인 것을 희생시킨 채, 지나치게 세속적인 것을 격상시킴)의 등장이다. 카톨릭적 왜곡이 소명의 이차적인 의미를 희생시킨 것이라면, 기독교적 왜곡은 소명의 일차적인 의미를 축소, 희생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적 왜곡은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위한’ 일차적인 소명을 ‘모든 이가,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부름받았다는 이차적인 소명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분리시켜 버렸다. 결국 일, 거래, 고용, 직업 등의 단어들이 소명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위한 일차적 소명을 무시하거나 저버리고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활동이 다 소명이라고 혹은 소명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독교 승리주의, 고지론 등이 바로 여기에 닿아있다.
오스 기니스의 제언
6. 오스 기니스는 이러한 소명에 대한 두 왜곡을 극복하고, 총체적인 관점에서의 소명을 회복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우리는 소명이, 마치 부르시는 분이 없는 어떤 것인 양 생각하는 모든 관념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한다. 부르시는 분이 없다면 소명도 없고, 단지 일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좀더 적극적으로는 일차적인 소명을 우선적인 위치로 복귀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소명의 배경이 되는 예배를 회복하고 또한 소명의 핵심인 예수님에 대한 헌신을 회복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라 한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 경계하라. 그분에 대한 헌신의 최대의 경쟁자는 그분을 섬기는 활동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지 그분을 위해 어떤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