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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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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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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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의 직업은 죽은 자의 흔적을 치우는 이름도 생소한 특수 청소부입니다. 누군가 죽어야 비즈니스가 성사되고, 죽은 자가 늘어나야 그의 비즈니스는 활기를 띕니다.
 
2. 우리가 가족에게 그러하듯이 익숙해지면 무례해지기 마련인데, 작가는 자신의 일상으로 접하는, 어쩌면 너무나도 익숙한 타인의 죽음을 무례히 대하는 법이 없습니다.
 
3. 단 한번도 마주쳐보지도 않은 타인, 앞으로도 결코 마주칠 일이 없을 죽은 자들에 대한 그의 시선은 너무나 따뜻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자신의 삶을 자책하며 작가는 “죄책감이 내가 발을 디디고 선 땅”이라고 합니다. 죽은 자의 ‘생’에 대한 존중이 느껴집니다.
 
4. 죽은 자의 흔적과 냄새는 가족들마저 기피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특수 청소부라는 작가의 직업이 존립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업이라고 하지만, 작가에게 그 일은 단순한 돈 벌이 훨씬 그 이상의 의미임이 분명합니다. 그의 글에선 ‘거룩한 소명의식’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5. 작가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잔혹한 범죄 현장은 거의 대게 돈에 얽힌 살인과 상해치사가 일어난 곳이라고 합니다. 돈 때문에 발생한 죽음의 흔적을, 돈을 받고 지워내는 동안, 작가는 돈 앞에 무릎꿇는 인간의 저열한 속내를 한탄합니다. 그런 그에겐 돈이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6. 늦게까지 일한 피곤이 붙드는 다음 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려다 걸려온 전화 한통을 붙잡고 작가는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그녀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하루를 반납합니다. 그녀의 착화탄 자살을 가까스로 막고 그가 문자로 받은 칭호는 고작 ‘나쁜시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쉽니다. 죽은 사람은 문자를 보낼 수 없기에 또한 그 순간엔 그녀를 살려야만 자신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말입니다.
 
7. 누군가의 죽음으로 성사되는 작가의 비즈니스는 그에겐 생업 이상의 소명임이 분명합니다. 생업이란 문자 그대로 살기 위한 일인데, 그는 살기 위해 모든 것을 제쳐두고 낯선 타인을 살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8. 술에 취한 채 착화탄 자살의 고통 정도를 묻는 낯선 여자의 전화 한통에도 자신의 명치에 강력한 금속 볼트가 조여지는 듯한 아픔-오밀리미터만 더 조이면 가슴 한 가운데가 산화된 철판처럼 후드득 뜯겨나갈 것 같은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드물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특수 청소부’는 거룩한 소명임이 분명합니다.
 
9. 산더미 같이 쌓은 쓰레기더미, 암모니아로 가득찬 수천병의 오줌병, 변기에 겹겹으로 쌓인채 굳어버린 타인의 배설물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를 가득 고여있는 죽은 자의 토사물과 각혈을 치워내며 작가는 난데 없이 변기를 찬양합니다. 변기가 찬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이내 수긍이 됩니다. 저 역시 작가의 말대로 이 지상에서 변기만큼 그 어떤 더러운 것도 한량없이 받아주는 너그러운 존재를 찾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10. 작가는 자신의 삶을 수도꼭지를 닮았다 합니다. 여기에도 아이러니가 등장합니다. 수도꼭지는 누군가가 씻는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를 씻기지 못하듯, 누군가의 죽음을 치우는 작가는 정작 자신의 죽음은 스스로 치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작가의 자신에 삶에 대한 자조(自嘲)나 한탄이 아닙니다. 그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결국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통찰한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자신을 위해서 타인을 씻겨주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11. 그렇게, 작가는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흔적을 치우며, 진정한 ‘生’의 의미와 소중함을 배우고 이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도 그것을 나눠줍니다. 작가는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 인간이 죽은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과 존재에 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나마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있고 굳세게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기전(機轉)이 되리라 믿는다.” 고백합니다. 아, 그는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결코 무례한 법이 없습니다.

12. 특수 청소부라는 작가의 생업만큼이나 성직자라는 나의 생업은 ‘타인의 죽음’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죽음을 자주 말하며, 접하며, 의미를 해석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죽음을 말하는 내 언어는 너무나 가벼워졌고, 시선은 어느새 따뜻함을 잃어버린 듯 합니다. 익숙함이 불러온 대참사입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무엇보다 죽은 자의 고통의 흔적을 보는 작가의 눈은 제게 소명을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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