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讀讀讀.똑똑똑, 이 책 추천해도 될까요?

피로사회 (한병철)

최고관리자 0 1769

#피로사회

 

1. 한병철은 각 시대마다 고유의 질병이 있다고 하면서, 과거의 질병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였고, 지금은 신경성 질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2.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인체는 면역을 생성해 그것을 퇴치하듯, 과거의 시대는 외부의 이질성과 타자성을 처치할 대상으로 규정했다이질성과 타자성을 통제하기 위한 '규율'은 점점 주류를 보호하기 위한 폭력적 도구로 고착되어, 그 바깥에 거하는 모든 대상을 부정의 대상으로 낙인 찍는다. 그러한 과거의 시대에선 "~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 규율을 벗어나면 영락없이 광인 혹은 범죄자의 굴레가 씌워지곤 했다. 


3. 반면, 이 시대의 질병은 신경성 질환이다. 우울, 주의력결핍,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과 같은 21세기의 신경성 질환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걸까? 흥미롭게도 한병철은 그 원인을 '부정' 이 아닌, '긍정'에서 찾는다이 시대의 구호는 '할 수 있다.' 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세지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한병철이 날카롭게 지적하는 이 시대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긍정의 과잉.


4. 정말 성실히 노력하면 누구나 다 성공할 수 있나? 정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누구나 바라고 꿈꾸는 것을 성취할 수 있나? 긍정(할 수 있다)은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건가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쓰러져 있는 이에게(혹은 자기 자신에게) "넌 할 수 있어. 포기하지마 말고 조금만 더 노력해봐." 라고 말하는 것이, 응원이긴 한걸까? 혹시 폭력은 아닐까부정(할 수 없다)을 긍정하는 것은 절대적 금기인가?


5.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이면에는 성과주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과잉된 긍정성은 성과주의(Meritocracy)사회의 가장 충실한 홍위병이 되어, ‘할 수 없는 사람해내지 못한 사람을 색출하여 무소불의 권력으로 그들에게 낙오자(루저)라는 낙인을 찍어댄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피로해지고, 좌절하게 되며, 그 결과 우울감 등 각종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p.24)


이렇게 부정성에 의해 제약받지 않은 긍정성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귀결되어, 결국 피로사회를 낳게 되는 것이다.


6. 한병철의 분석처럼, 과거의 규율사회는 부정성(해서는 안된다)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복종케 했다면, 지금의 성과사회는 긍정성(할 수 있다)으로 우리 스스로 주권을 버리게 만든다. 이 시대의 과잉된 긍정성은 결과적으로 자기자신에 대한 자발적인 착취라는 전대미문의 괴물을 낳게 된 것이다. 자기자신을 착취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피로사회의 얼굴이다.


7. 그렇다면, 신경증적인 이 시대의 대안은 무엇인가? 한병철은 이 책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깊은 심심함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후 김용옥과의 대담에서는 그가 이 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이었다고 밝힌다. 무용지용 즉, '쓸모없음의 쓸모'를 발견하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한병철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52p)


생산성이 우상이 된 성과사회에서의 '할 수 없음'은 곧 '쓸모 없는 것'의 동의어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쉴 새 없이 자신을 압박하고 또 압박하게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은 피로와 우울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제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하지 않을 힘을 키워가야 하며,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함께 이야기하며, 할 수 없는 자아와 타인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시력, 인간의 실력을 길러가야 한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