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화해 (현실검증력 / 강박적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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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3:48
오은영 박사의 '화해' 중 [1.현실검증력, 2.강박적 순환]
[함께 읽고 싶은 한 꼭지- Just Typing-1st.]
/ 오은영의 화해(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용기) 중
..... 자아의 기능 중 현실 검증력이라는 것이 있어요. 아주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나의 모습을 현실에 맞게 검증해서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평생 동안 갖추려고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기능이지요. 인간은 어떤 계기로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에요. 마음은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가졌지만 행하지 않았다면 괜찮습니다. 잘 살고 있는 거예요. ‘나’의 정신은 건강한 겁니다.
어린시절 학대했던 부모를 용서하고 이제 그만 자기 안에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낫게 해 주고 싶다가도,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르면 또다시 부모가 미워집니다. 가장 많이 사랑하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 주어야 하는 사람이 나를 감정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공격했다는 것은 아이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절망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부모를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 이렇게 침습적인 부모가 있어요. 습자지에 물이 스미듯이, 자녀의 인생에 침습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리고 욕하는 공격의 형태는 아니지만, 아주 수동적인 방식으로 집요하게 자식들의 인생에 스며듭니다. 자식이 스스로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요구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해요. 이것은 자식을 미치도록 힘들게 합니다. 이러면 자식은 내 부모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혼도 하기 싫고, 아이를 낳기도 싫어질 수 있어요.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가 싫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너무너무 밉기도 합니다. 분노도 느낄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그 감정을 두려워합니다. 버리지도 못하고 미워하지도 못하는 부모에게 갖는 그 당연한 감정에 오히려 자신이 더 불안해하고 괴로워합니다. 사실 그런 부모 밑에서 미움이나 분노보다 두려움을 더 크게 갖는다는 것은, 이미 ‘나’는 그 부모보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증거예요. 스스로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 많은 순간 자신을 채찍질해 왔을 겁니다.
..... “어머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다”,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지 않겠다” 등등은 부모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기본적으로 ‘미움’이라는 감정이 있어요. 닮고 싶지 않다는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가 그 대상에 대해 내 마음이 ‘미움’, ‘싫어함’,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부모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부모가 밉다’, ‘부모가 싫다’라는 내 감정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너무 싫은 마음, 너무 미운 마음이 많으면 ‘부모라는 사람’을 극복하기가 어려워요. 미움과 분노에 지나치게 휩싸여 있으면 그들로부터 내가 받은 영향력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부모로 인해 생겨난 상처로 많이 고통스럽다면, 부모에게 화가 나고 분노가 느껴지겠지요. 당연히 느껴지는 그 감정을 인정한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내가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해결하려면, 우선 나의 마음부터 인식해야 합니다. 나의 마음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다음에 내 스스로 그 마음을 소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갖는 감정부터 인정하세요. 미우면 미워하는 감정을 가져도 괜찮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분노의 마음으로부터 도망가지 마세요. 그런 감정을 갖는 것에 지나치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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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한 꼭지- Just Typing-2nd.]
/ 오은영의 화해(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용기) 중
..... 강박적 순환(Repetition Compuls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채우려고 같은 패턴의 실수를 반복한다는 겁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주로 그렇습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 정작 아버지를 닮은 사람과 사귀거나 결혼하는 경우가 그래요. 내 안의 핵심의 갈등을 파악하고 이로 인해서 발생되는 중요한 오류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은 그 오류를 반복하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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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매우 불우하게 컸어요.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좀 이상했어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건을 던지고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려고 들고,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늘 뭔가를 꾸미고 속여서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는 성인이 되어 여자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귈 때마다 헤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했고, 모든 일을 여자에게 맞춰 주었어요. 여자가 화를 내면 무조건 매달렸어요. 여자가 잘못한 일에도 남자가 빌었어요. 그랬더니 만나는 여자마다 이 남자를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러다 결혼을 했어요. 겉보기에는 외모가 아름답고 착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고등교육도 잘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상을 못할 정도로 가학적으로 남편을 때렸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그 여자가 자신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어요. 혼자 남겨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어요. 남자는 여자가 때리는 대로 그대로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여자는 남자를 점점 더 심하게 대했습니다.
남자는 견딜 수 없어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어요. 치료를 받고 나서는 마음이 좀 건강해져서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여자에게 이혼하자고 했어요. 남자의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들었어요. 여자가 남자를 때린 이유 중에는 시어머니에게 미움을 받아 쌓인 분노로 인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태연스럽게 “화해해”라고 말했어요. 남자는 “어머니, 저는 배우자를 때리는 사람하고는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걔가 괜히 때렸겠니? 네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그러지.” 남자는 정색하고 다시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어머니도 저한테 맞을 짓 많이 하셨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어머니를 때렸습니까? 제가 어머니를 때리지 않은 것은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부모를 때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한참을 아무 말도 못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야, 내가 다른 사람한테 이혼한 아들 있다고 창피해서 어떻게 말하냐!” 그 남자는 어머니 같은 여자랑 결혼하지 않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랑 똑같은 여자랑 결혼했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 사람은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아요. 사람은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라서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버려질 수 없어요. 수없이 버림을 받았다고 느끼며 살아온 지난 인생은 절대로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마음이 약해지고 겁이 날 때마다 항상 되뇌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면 안 되는 존재다. 누구도 감히 나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이 세상에 때리고 학대하고 버려도 되는 사람은 없어요. 생긴 모습이나 가진 것, 배운 것이 어떻든 사람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