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최태성) 中. "人情에 관하여". #받는인정,베푸는인정 #양반들은왜대동법을반대했을까?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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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7 16:18
人情. 받는 인정, 베푸는 인정
1. 조선 시대, 백성들이 내는 세금은 크게 세 종류였습니다. 전세, 역, 공납입니다. 전세는 지금의 소득세와 같은 것이고, 역은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고, 공납은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국가 전체 재정의 약 60%까지 차지하게 된 공납이란 제도 때문에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수확이 풍성한 해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매해마다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각 지역에 일정한 할당량을 고수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주도 백성들은 귤을 공납으로 바쳐야 했는데, 귤 농사가 매해 꼭 잘되는 것은 아니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관리들은 집집마다 정해진 할당량을 반드시 수거해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 백성들은 공납용 귤을 준비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몰래 귤나무에 뜨거운 물을 부어 귤나무를 죽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2. 이런 상황 속에서 수수료를 받고 공납을 대신해 주는 대행업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공납을 막아준다고 해서 스스로 방납업자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납업자들이 지방 관리들과 결탁해서 백성들을 오히려 더 큰 고통에 밀어 넣었습니다. 지방 관리들이 커미션을 받고 오직 방납업자들을 통해서만 공납을 받은 것입니다. 백성들은 공납을 바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3만원 시세의 귤 한 상자를 방납업자들에게 5만원, 10만원을 주고 사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 방납업자들이 지방 관리에게 은밀히 건넨 그 검은 돈을 ‘인정(人情)’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사또가 방납업자들에게 “넌 요즘 따라 왜 이리 인정이 없느냐?” 묻기라도 하면 백성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는 것이었죠.
3.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세 개혁안이 바로 대동법이었습니다. 대동법은 표면적으로 보면 지역 특산물이 아닌 쌀로 세금을 내자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대동법이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이유는 쌀로 세금을 내는 납세 방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대동법의 핵심은 세금을 쌀을 생산하는 토지의 면적에 따라 부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즉, 많은 토지를 가진 사람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송곳 꽂을 땅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세금을 면제해주자는 것이 바로 대동법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땅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소유라는 성경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법이 바로 조선시대 대동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4. 그런데 이 대동법은 실제로 실행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극렬한 반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반대했을까요? 당연히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당시 양반 사대부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동법은 경기도 지역에서만 시행되다가 100년이 훌쩍 지나 대동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육이란 분의 헌신 덕분에 충청도와 최고의 곡창지대인 전라도 지역으로 대동법이 확산되어 마침내 전국적으로 시행되게 됩니다.
5. 많은 분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혼동하고 더 나아가 우상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은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소유가 자신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 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놓으신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떠올리면 마음이 그리 편하진 못할지라도 많이 가졌으니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그리 극렬히 반대할 문제가 되지는 않겠습니까? 자본주의의 우상을 배격한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빨갱이로 모는 것은 더더구나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동법의 가치는 많이 가진 자들에겐 반대를, 없는 자들에겐 환영을 받는 것은 사실 우리 안의 탐욕 때문인 것 같아 참 씁쓸합니다.
받고 싶은 인정뿐 아니라, 베풀며 함께 사는 인정이 그립습니다.
#최태성, '역사의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