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글쓰기 中. "더블 스피크(double speak)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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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 中. "더블 스피크(double speak)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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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스피크 경계


책, <강원국의 글쓰기>를 보면 저자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을 인용하며, '더블 스피크(double speak)'를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더블 스피크란 사실을 호도하기 위해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서 단어의 원뜻을 왜곡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더블 스피크의 예를 들면, 

(위 책과 인터넷 참조)  


살인을 -> '불법적, 자의적 생명박탈'로 

폭격을 -> '공중 지원'으로 

민간인 사상자를 -> '부수적 피해'로  

해고를 -> '비자발적 고용계약 해제' 혹은 '인력구조 혁신'으로

부자 감세 정책을 -> '세금 구제 정책'으로

비정규직을 -> '시간 선택제'로 

아파트 미분양분을 -> '회사 보유분'으로 

해고를 맘대로 하겠다는 말을 -> '노동 유연성'이란 표현으로

말 안들으면 조져버리겠다를 -> '질서파괴부터 잡겠다'는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더블 스피크의 의도는 명확하다. 

의도적으로 본질을 흐림으로 자기 정당화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더블 스피크는 국가나 자본가(회사)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도 더블 스피크의 정교한 기술(?)이 종종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더블 스피크의 희생양 단어들은 안타깝게도 <믿음, 은혜, 순종, 기도, 헌신>과 같은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이다. 


믿음으로 하겠다는 말은 '난 상식 따윈 무시하겠다'는 의지로, 

은혜로 하자는 말은 '그냥 대충 넘어가자'는 의도로, 

순종하라는 말은 '입 다물고 내 말 들으라'는 강요로, 

기도하라는 말은 '당신의 신앙은 아직 멀었다'는 정죄의 언어로, 

헌신은 부당한 '열정페이'를 정당화하는 단어로, 


... 그렇게 악용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더블 스피크는 명확한 어휘를 사용해야 하는 글쓰는 이들만의 경계대상은 아닐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경계하라 한 거짓교사들은 한결같이 더블 스피크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배욕구와 이익 실현을 위해 누구보다 경건한 단어와 은혜로운 어휘를 사용한다. 

그들이 정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꼼꼼히 확인하고 따져보아야 한다. 


더블 스피크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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